[@뉴스룸/김재영]담합에 손발 묶인 건설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9일 03시 00분


김재영 경제부 기자
김재영 경제부 기자
“손발 꽁꽁 묶어놓고 해외 가서 돈 벌어오라니 말이 됩니까.”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최근 기자에게 이런 불만을 털어놨다. 해외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이후 ‘제2의 중동 붐’이 기대되고 국내에선 주택경기가 되살아나고 있지만 건설사들은 요즘 우울하다. 4대강 등 대형 국책사업 입찰에서 담합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총 1조 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낸 데다 공공공사 입찰 참가제한도 임박했기 때문이다.

한국건설경영협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 4월까지 공공공사 입찰 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고 발주기관에서 입찰참가 제한을 받은 건설사는 60여 곳, 100대 건설사 중에서도 51곳이나 된다. 여기에 임직원 형사처벌과 발주기관의 손해배상청구까지 줄줄이 물려 있다.

건설사들은 발주기관의 제재에 대해 처분 취소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시한폭탄의 바늘은 재깍재깍 돌고 있다. 35개사가 연루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판교아파트 건설공사, 19개사가 엮인 4대강 사업 등 관련 판결이 이달부터 줄줄이 이어질 예정이다.

건설업계는 입찰 참가제한까지 받는 건 과도하다고 호소한다. 한 건의 담합만 적발돼도 최장 2년간 모든 공공공사 입찰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업 면허를 반납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1심 판결에서 패소하면 그 피해는 개별 회사에 그치지 않는다. 하반기부터 국내의 광역상수도, 도로·철도 건설, 지하철공사 등에 참여할 업체가 없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해외 건설에도 악재다. 해외 입찰에서 우리 기업의 입지가 크게 위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등 경쟁국 업체들은 해외 발주처를 대상으로 “한국 업체가 수주해 봐야 국내 제재에 묶여 공사를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흑색선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들의 입찰 담합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이 담합을 유도한 측면이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대형 국책사업에 여러 건설업체의 참여를 독려하면서 업체당 1개 공구에만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했고, 저가 수주를 사실상 강요해 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의 입찰 담합은 ‘이익 극대화가 아닌 손실 최소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담합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5년이 지난 담합사건에는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1사 1공구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예방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현재의 얽힌 매듭을 푸는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업계는 특별사면 제도를 통해 현 상황을 타개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해외에 나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달러를 벌어오라고 재촉하기 전에 묶인 손발부터 풀어 달란 요청이다.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낼 수 없다면 끊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김재영 경제부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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