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년]유가족-생존자-자원봉사자… 꾹꾹 눌러쓴 11통의 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3일 03시 00분


[가슴으로 쓴 편지]엄마 아빠 형, 나 요셉이 없어서 많이 힘들지

《 세월호 유가족은 물론이고 생존자, 자원봉사자, 민간잠수사, 진도 어민 등은 세월호 1주년을 맞아 편지를 썼다. 누군가는 밤새 고민해 간신히 썼다며 쑥스러워했다. 글쓰기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기에 내용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향한 그리움, 살아남은 생존자와 유가족을 향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감사함. 그들의 진심을 기사로 조심스레 옮긴다. 편지 전문은 동아닷컴(www.donga.com)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엄마 아빠 형 잃은 8세 요셉이가 하늘나라 가족에게
“내가 기도해줄게… 걱정하지마 사랑해♥”


“엄마 아빠 형… 나 요셉이 없어서 많이 힘들지. 조금만 기달려 내가 오래오래 살아 가서 천국 빨리 갈게.”(오래 살아 천국 가겠다는 의미)

조요셉 군(8)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가족 모두를 잃었다. 제주도로 출장 가는 아버지를 따라 가족 여행을 가던 중 참변을 당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조 군은 또래 아이들처럼 피아노, 미술, 태권도 등을 배우며 씩씩하게 지낸다. 하지만 가끔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있다. 식사를 마친 후 또는 세월호 뉴스가 TV에 나올 때. 맛있는 반찬을 앞에 두고 “형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부모 이야기에 눈물짓는 외할머니 때문인지 조 군은 ‘엄마, 아빠’라는 말을 평소 입에 잘 담지 않는다.

편지를 쓰자는 말에 조 군은 다른 종이에 연습까지 한 뒤 정성스레 옮겨 썼다. 활짝 웃고 있는 부모와 형의 얼굴을 그려 넣고, 짧은 편지 안에 사랑한다는 말을 3번 썼다.

“내가 기도도 많이 해 줄게. 그러니까 걱정 하지마♡ 사랑해♥”
○ 진
도에서 항찬이가 단원고 친구들에게 “친구 빈자리를 느낄 너희들은 어떨지…”

“나도 안산에서 태어나서 중3 때까지는 안산에서 살다가 고1 때 진도로 이사 와서 너희 학교(단원고)에 아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어.”

진도고등학교 3학년 조항찬 군(18)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안산 단원고 친구 5명 가운데 4명을 잃었다. 괜찮으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조 군은 “안산에 있는 친구들이 더 힘들겠죠”라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르던 진도실내체육관을 바라보고, 하루에도 수십 번 구급차와 헬기 소리를 들었던 진도고 학생들도 우울 반응을 보였다. 조 군은 특히 힘들어했다. “내가 아는 친구는 구조됐을까?” 사망자와 실종자 명단을 확인하기 두려웠다고 적었다. 조 군은 참사 1년이 다 되도록 살아남은 친구에게 제대로 연락하지 못했다며 “친구가 이 편지를 꼭 읽어주고, 위로를 건네고 싶은 저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디서 무얼 하든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랄게.”
○ 서거차도에서 섬마을 이장이 생존 학생들에게 “아저씨가 오래오래 많이 사랑할게”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지점으로부터 약 5km 떨어진 전남 진도군 조도면 서거차도 방파제에 헬기가 착륙해 아이들을 내려줬다. 주민들은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혔다. 마을 이장인 지체장애인 박권삼 씨(65)는 그날 아이들 표정을 잊지 못한다. “라면 80개 정도 끓여 나눠줬어요. 더 많은 생존자가 와서 라면 먹기를 기다렸는데….”

지난달 18일 안산시를 방문한 조도면 주민들은 생존 학생들이 쓴 감사 편지를 전달받았다. 비록 일 때문에 단원고에 가지 못했지만, 박 씨는 답장을 하고 싶다며 “아저씨가 많이 오래오래 사랑할게, 섬마을 절대 잊지 마라”고 응원의 편지를 썼다.

또 다른 서거차도 주민 정해석 씨(48)도 함께 편지를 썼다.

“더 잘해서 보내지 못한 우리가 더 미안할 따름이지… 훗날 훌륭한 ○○, ○○이가 되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지.”
○ ‘파란 바지 구조영웅’ 김동수 씨가 생존 학생들에게 “내 자식과 같이 소중한 친구들아”


“우리가 슬픈 인연을 맺은 지도 일 년이 되어 가는구나. 우리는 죽음을 거슬러 살아왔지만 산 것 같지 않은 일 년의 세월이었던 것 같다.”

김동수 씨(50·당시 화물차 기사)는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 10여 명을 구조해 ‘파란 바지의 구조영웅’으로 불리지만, 오히려 구조하지 못한 학생들 생각에 괴로워했다. 지난달 19일에는 자택에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자해하기도 했다. “트라우마라는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해 고전하고 있는데, 아직 여리디여린 너희들은 오죽하랴.”

김 씨는 트라우마 때문에 의도치 않은 언행이 불쑥 튀어나오는 등 일상생활이 버거운 상태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김 씨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김 씨는 “그 친구들도 힘들 텐데 나까지 챙겨줬다”며 미안해했다. 김 씨는 학생들에게 감사와 함께 이겨내자는 응원을 전하겠다며 편지를 썼다. 심리치료 등으로 힘겨운 김 씨 대신 부인 김형숙 씨가 편지를 작성했다.
○ 실종자 허다윤 양 아버지가 자원봉사자들에게 “유가족이 되면 다시 감사인사 할게요”


지난해 11월 세월호 수중수색 종료 후 실종자 허다윤 양 아버지 허흥환 씨(51)는 서울로 향했다. 못 본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둘째 딸을 찾아달라는 호소를 들어줄 사람들을 찾아서.

허 씨는 “그냥 말로 하는 게 편한데…”라며 멋쩍어했다. 서울 광화문광장도 찾고, 국회와 청와대 인근 분수광장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1년간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힘든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 딸을 찾으면 고맙다고 한 명, 한 명 제대로 인사하고 싶었지만, 아직 딸 다윤이는 바닷속에 있다. “그분들께는 너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이다. 보고 있을 때면 가슴이 뭉클해져 눈을 못 맞춘다.”

그는 실종자를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는 절규를 편지에 담았다. ‘유가족’이 되면 도움을 준 자원봉사자와 국민들에게 다시 감사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지금도 묵묵히 봉사하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 고 임세희 양 어머니가 둘째 아들에게 “네가 웃어야 하늘나라 누나도 웃을 거야”


단원고 2학년 9반 16번 고 임세희 양(당시 17세)의 동생 경원 군(16)은 올해 3월 누나가 다니던 단원고에 입학했다. 경원 군이 1학년 9반 16번이라는 걸 어머니 배미선 씨가 알게 된 건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다.

이달 7일은 경원이의 생일이었다. “미안하구나. 누나 없이 맞이하는 생일. 케이크는 샀지만 차마 노래가 나오질 않아 눈물만 뚝뚝 흘렸지.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생일을 눈물로 보내는구나.” 어머니는 아들의 생일을 마음껏 축하해줄 수 없었던 게 내내 걸렸다. “미역국도 먹기 싫다는 아들, 축복받아야 할 생일을 그냥그냥 평범한 날로 보내게 해서 가슴이 저려온다.” 가족들 마음 아플까봐 누나를 화장할 때 외에는 눈물을 보이지 않던 아들이 더 가슴 아프다.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 파이팅 하면서 살자. 흐드러지게 피어 화사한 벚꽃처럼 오늘 하루도 한번 웃어 보면서 하루를 살아 보자. 그래야 누나가 좋아할 거야. 따라쟁이 동생이 오늘은 웃는다고 누나도 따라 웃을 거야.”

○ 청주에서 고 남윤철 교사 어머니가 아들에게 “여기 걱정 말고, 제자들 잘 보살펴줘”


“며칠 전에는 길을 가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눈물이 쏟아지더구나. 왜일까 생각하니 너와 함께했던 마지막 봄을 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8일 국민대 북악관 708호에서 열린 ‘남윤철 강의실’ 명명식에 참석한 단원고 영어교사 고 남윤철 씨(당시 35세)의 모친 송경옥 씨(62)는 눈물을 흘렸다. 아들과 함께 ‘남윤철 강의실’에 들어와 봤다는 송 씨는 “아들이랑 이 교실에도 왔었다”며 창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구명조끼를 던져주고 학생들을 더 구하기 위해 객실로 들어간 남 씨를 의인이라고 불렀다. ‘남윤철 장학금’도 생겼다. 하지만 송 씨에게는 의로운 교사보다 자상하고 수다스러운 아들이 익숙할 뿐이고, 그저 보고 싶을 뿐이다.

“여기 남아 있는 학부모들도 선생님인 너와 함께 있어 많은 위로가 되실 거야. 제자들 잘 보살펴 주거라. 이제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편안하게 지내. 또 편지할게.”
○ 안산에서 동생 다슬이가 오빠 다운에게 “오빠 방에 놓인 기타 보면 눈물이…”


자작곡 ‘사랑하는 그대여’를 남기고 떠난 단원고 2학년 고 이다운 군(당시 17세). 그룹 포맨의 신용재 씨(26)가 이 노래를 완성하고 발표함으로써 가수가 목표였던 이 군의 꿈은 조금이나마 이루어졌다.

이 군의 부친 이기홍 씨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고 했다. 이 씨는 지난 1년간 몸무게가 15kg 이상 줄어들고 시력도 급격하게
나빠져 일을 그만뒀다.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으나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고, 돋보기 안경을 써야할 만큼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이
군의 동생 다슬 양(16)이 아버지 대신 펜을 들었다.

“오빠가 노래 작사 작곡할 때 가사나 멜로디 수정할 부분 있으면 같이 하고 둘이서 비밀 얘기도 많이 했었는데….”

다운 군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를 때 함께 듣곤 했던 동생과 아버지는 다운 군 방에 놓인 기타를 보면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동생은 다운 군이 돌아와 기타 가르쳐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 잠수사 전광근 씨가 유가족 박용우 씨에게 “잘 이겨내시길… 저희가 응원할게요”


민간 잠수사 전광근 씨(39)는 세월호 내부 수색을 위해 약 80일간 침몰 지점에 정박한 바지선에 머물렀다. 그리고 수차례 바닷속을 드나들며 실종자 수색 작업을 했다.

전 씨는 세월호 1주년을 얼마 앞두고 단원고 고 김수빈 군의 이모부 박용우 씨의 전화를 받았다. 바지선에서는 자주 봤지만, 경기 안산시로 올라간 뒤 처음 온 연락이었다. 전 씨는 “내가 먼저 연락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했단 마음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고마운 마음과 응원을 꼭 전하고 싶다”며 편지를 작성했다. 전 씨는 일부러 노란 편지지를 고르고, 편지 위쪽에는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붙였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단 말 전합니다. 저희에게 고맙다고 부탁한다고 하셨던 것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대로 (고마움을) 표한 적이 있나 싶네요. 이제 저희가 응원해 드립니다. 잘 이겨내시고 힘내시고요. 항상 건강부터 챙기시고요.”
○ 계약직 승무원 고 안현영 씨 어머니가 잠수사들에게 “살신성인 있었기에 恨 풀었네요”


지난해 4월 28일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수색 상황을 브리핑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던 잠수사들에게 한 부모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고개가 땅에 닿을 듯 숙인 채 “승무원복 입은 아이 있으면 같이 구조해 주세요”라며 울음과 함께 ‘쪽지편지’를 잠수사에게 전했다(본보 2014년 4월 28일자 A10면 참조 ). 편지를 받은 잠수사들은 바다를 뒤졌고, 5월 5일 계약직으로 세월호 매점과 식당에서 일했던 이벤트 업체 대표 안현영 씨(당시 28세)를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 당시 나 자신 또한 그 누구도 아들을 직접 건질 수 없었기에 절실히 (도움이) 필요했고, 또 의지했고 믿었던 잠수사님들이었기에 우리 가족에겐 너무도 중요했습니다.”

경기 부천시에서 만난 안 씨의 모친 황정애 씨(56)는 세월호 1주년을 앞두고 잠수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황 씨는 “이들의 살신성인이 없었다면 저는 평생 한을 안고 살아갔겠죠”라고 말했다.
○ 자원봉사자 김수옥 씨가 유가족들에게 “힘들겠지만… 받아들이려는 연습을”


“새벽 2시 즈음에 어김없이 뛰어 나와서 아들한테 전화 왔다고, 아빠 빨리 오라고 했다고 바다로 뛰어들려던 ○○아빠. 내 속 썩인 것 알지요?”

대한민국 일등봉사대라는 봉사단체를 이끌고 있는 김수옥 씨(56·여)는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전남 진도군으로 향했다. 김 씨는 “8년 전 교통사고로 17세 아들을 잃었기 때문에 유가족들의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약 다섯 달 동안 팽목항에서 바라본 유가족들의 모습을 노란 편지지에 담았다. “쓰러져 주사 맞고 다시 울던 엄마, 아이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기도하는 아빠,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던 가족들….” 김 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김 씨는 편지로 유가족들에게 위로와 당부를 전했다. 지금은 힘들어도 받아들이려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이 하늘나라에서 부모님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이건혁 gun@donga.com·최혜령·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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