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이 서로 이런 주장을 내놓으며 경기도의회가 편성한 예산의 사용처를 놓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6·4지방선거 과정에서 학부모들로부터 “쪼그려 앉아 용변 보기 싫은 아이들이 조퇴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경”이라는 민원을 숱하게 받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88억 원을 편성했는데 도의회 심의 과정에서 예산 대부분을 ‘학교급식시설 확충’에 쓰도록 누군가 용도를 고쳐 최근 집행을 앞두고 갈등이 생긴 것. 경기도의 양보로 일단락됐지만 ‘엉뚱한 용도에 세금을 쓰는 게 맞냐’는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 ‘화장실’ 대신 ‘급식’으로 바꾼 배후는?
지난해 12월 도의회 김현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류재구 예산결산위원장(새정치연합) 등은 학교시설 개선비 288억 원(초등학교 노후화장실 개선비)을 편성하는 데 합의했다. 도내 초등학교 243곳이 혜택을 볼 수 있었다. 3년이면 말끔한 양변기로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같은 달 24일 예결위 계수조정 소위를 거쳐 최종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에는 무슨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학교급식기구 및 시설 확충(211억 원), 학교시설증개축비(77억 원)’로 둔갑해 있었다.
도 집행부는 “도교육청의 요청을 받은 계수 조정위 의원 중 누군가 고쳐놓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도교육청을 배후로 보고 있다. 도교육청은 펄쩍 뛰고 있다. 한 관계자는 “당시 의회에서 학교시설개선비 288억 원이 있는데 어디에 쓰겠느냐고 물어와 지금의 용도가 좋겠다고 알려준 게 전부”라며 ‘배후설’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의회의 누가 이 내용을 물어왔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정해진 대로 급식시설 개선에 돈을 쓰자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 결국 엉뚱한 곳에 예산 쓰일 판
올 초부터 경기도와 도교육청은 3차례 만났지만 접점은 없었다. 도교육청 정책기획관실 관계자는 “도의회가 결정한 것을 바꾸면 도의회를 무시하는 일이 된다”며 “예산 세출항목에 정해진 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산을 다루는 누군가가 남모르게 문구를 고쳐 놓으면 당초 쓰임새와 다른 분야에 세금이 들어가도 손댈 수 없다는 식이다. 이런 행태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도의회도 문제가 있다.
경기도는 결국 남 지사가 내세우는 연정의 주요 상대인 도의회를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급식시설 개선에 화장실 예산을 쓰기로 했다. 화장실 개선이든 급식시설 개선이든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여름방학 중 공사를 마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급식시설 개선도 중요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남 지사가 유권자와 학부모에게 했던 약속은 결과적으로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남 지사는 박수영 행정1부지사를 최근 도의회에 보내 재발 방지를 요구했고 확답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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