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함께 슬픔 나누고 희망 되찾는 세월호 1주년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6일 00시 00분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너무너무 사랑해. 정말 미안하다.” “사랑한다. 미치도록 보고 싶구나.”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 유족들이 추모 전시회에 남긴 쪽지 편지들이다. 짧은 글이지만 1년 전 안타까움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기다리래.” 벌써 배를 빠져나간 선장 이준석이 시킨 안내방송에 따라, 구명조끼를 입은 채 침몰하는 선실 속에서 불안을 삼키며 서로를 격려하던 아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분노가 치민다. 우리의 기억은 여전히 세월호에 붙잡혀 있다.

사망·실종자 304명.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실종자가 9명이다. 한 실종자 가족은 “1년이 지났다는 게 뭐가 중요해. 아직 가족이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않았는데”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세월호 1주년은 지난 1년간의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고통의 시간일 뿐이다. 잔인한 기다림이다. 맹골수도에서 살아 돌아오기를 고대했던 가족이 시신으로 돌아오면 그나마 시신이라도 건졌다는 안도와, 죽음을 확인한 슬픔이 뒤섞여 오열을 터뜨렸다. 그런 감정마저도 가질 수 없는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위로의 말을 찾기가 어렵다.

세월호 참사는 결론적으로 누구 책임인가. 세월호 침몰은 탐욕스럽고 무책임한 누군가의 잘못으로 빚어진 사고다. 그 누군가를 특정하지 않으면 자칫 책임 회피가 될 수 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자 유병언은 경찰의 추격을 피하다 변사했고, 이준석 선장은 1심에서 징역 36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아직도 누구의 책임인지를 묻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잘못이 있음을 아프게 절감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놀랍도록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그 이면에 민관(民官) 유착과 안전 경시의 폐해를 낳았다. 지난 1년 동안 정부도, 국민도 ‘안전한 한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퇴직공직자의 취업 제한을 위해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했다. 뇌물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부정 청탁을 막기 위해 김영란법을 제정했다. 사고가 났을 때 컨트롤타워로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그러나 1년 전보다 얼마나 국가 개조의 과제를 이뤘는지 묻는다면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제도 개혁과 함께 ‘좋은 게 좋은 것’ ‘빨리빨리’ 같은 속도와 성과에 집착한 안전불감증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를 격렬한 갈등의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세월호 특별법이 논란이 됐을 때 여야 정치권은 통합의 구실을 하지 못해 국회 무용론까지 불러왔다. ‘잠수함 충돌설’ ‘국가정보원 개입설’ 등 괴담이 판쳤다. ‘다이빙 벨’이라는 구조 기구를 둘러싼 억지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국민 대부분은 건전한 상식으로 괴담과 억지를 물리쳤다. 세월호 1주년은 슬픔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는 통합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사망·실종자 304명 가운데 단원고 학생은 250명이다. 누구의 죽음도 아깝지 않을 리 없겠지만 못다 핀 꽃들의 죽음은 우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1년 전 많은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꼭 껴안고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고 안도하며 등을 다독였다. 그런 마음을 갖고 우리는 250명의 아이들을 잃은 대신에 2500명 아니 2만5000명의 아이들을 위험에서 구할 수 있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어른보다 앞서 떠난 아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세월호#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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