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9일. 경기 평택시 서호추모공원에 안치된 단원고 황지현 양 유골함에 적힌 날짜다. 바로 지현이 시신이 수습된 날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로부터 6개월도 더 지난 시점이다. 지현이는 생일 전날 엄마 아빠 품으로 돌아왔다. 수색 종료 전 마지막으로 발견된 실종자였다. 지현이 엄마 신명섭 씨(50·여)가 매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나가 딸을 위한 밥상을 차린 지 111일 만이었다. 지현이는 신 씨가 결혼 7년 만에 얻은 외동딸이다.
신 씨가 추모공원을 찾은 14일에는 비가 내렸다. “지현아, 엄마 왔다.” 문이 열리자 신 씨는 유골함부터 어루만졌다. “날씨가 차서 그런가, 애가 차갑네.” 지현이 봉안당에는 학생증 사진과 커서 찍은 사진 두 장, 어렸을 때 찍은 가족사진 한 장이 전부다. 지현이가 사진 찍기를 싫어한 탓에 이렇다 할 사진 한 장 남겨놓지 않은 게 신 씨는 두고두고 아쉽다.
신 씨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가 며칠 전에 일어난 듯한 느낌이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아침 차를 타고 지현이를 데려다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 근처 물닭갈비를 먹으러 가자며 엄마를 조르고, 중국어를 잘했고, 공포영화를 유난히 좋아해 엄마 손을 잡고 극장에 가던 지현이었다. 신 씨는 순간순간이 마치 어제 일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딸을 기다리는 동안 신 씨는 병을 얻었다. 없던 고혈압과 당뇨가 생겼다. 성난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겠다고 진도대교까지 걸어갔던 4월 20일, 해양수산부 장관을 만나느라 여섯 시간 넘게 앉아 있었던 5월 5일 이후부터 무릎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30분 이상 걷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딸이 돌아온 다음 신 씨는 건강해지려고 노력했다. 일부러 밥을 챙겨 먹고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딸의 책상에 매일같이 놔둔다. 미역국을 먹어도, 고기를 구워도 빼놓는 법이 없다. 신 씨는 지난 4일 1박 2일간 안산에서 서울까지 걷는 도보행진에도 성공했다. 곁에 없지만 지현이가 엄마를 챙겨준 덕분일 거라고 신 씨는 믿고 있다.
유가족인 신 씨는 실종자 가족으로도 활동한다. 유가족 모임에도 참석하고 실종자 가족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인양을 촉구할 땐 조용히 이들 옆에 선다. 여전히 무릎이 아픈 신 씨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가며 디딘다. ‘괜찮아, 10분만 더 서 있으면 돼.’ 딸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날 때면 한 손으로 피켓을 잡고 한 손으로 눈물을 닦느라 당황스럽지만 자리를 뜨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이 끝날 때까지 신 씨는 실종자 가족과 함께 피켓을 지킨다.
지현이 아버지 황인열 씨(52)는 딸의 장례식장에서도 진도에 남은 실종자 가족을 걱정했다. 빈소를 찾은 다른 유가족의 손을 잡고 “○○ 아빠는 마음이 힘들고 ○○ 아빠는 몸이 힘드니 어쩌면 좋냐”며 안타까워했다. 황 씨의 걱정을 들은 다른 유가족은 “다 같이 자식 잃은 부모인데 누가 누굴 걱정하냐”고 탄식했다.
“나는 눈물이 잘 안 나. 성격이 독한가 봐. 애 아빠는 잘 우는데 나는 눈물이 안 나더라고.”
추모공원을 나서던 신 씨가 말했다. 표정은 담담했다. 주차장을 가로지를 때 그렁그렁하던 눈물은 신 씨가 차에 타자마자 주르륵 뺨에 흘러내렸다. 급히 눈물을 닦고 화제를 돌렸다.
“광화문광장에서 운 건 노래 때문이야. 평소엔 괜찮은데 아이들 추모하는 노래만 들으면….” 신 씨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일부러 창밖만 쳐다봤다.
“여기 꽃이 엄청 예쁜 집이 있어. 거기서 꽃을 사 가려고. 그리고 간식거리 좀 챙겨 가야지.” 신 씨는 이날도 딸에게 줄 꽃과 간식을 살뜰하게 챙겼다. 그는 15일 다른 유가족과 함께 맹골수도 사고해역을 찾아 딸의 이름을 다시 소리쳐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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