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강북구 삼각산로 국립재활원 장애체험장.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기 위해 안대로 눈을 가리고 흰 지팡이를 든 기자는 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강사가 “뒷사람도 출발해야 하니 이동하라”고 재촉했지만 제자리만 맴맴 돌았다. 안대로 시야를 가리기 전까지 몰래 길을 외웠지만 당황해서인지 다 잊어버렸다.
이날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기자들은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체험했다. 일반인들도 거리와 지하철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휠체어와 지팡이를 사용하는 장애인처럼 이동해 보는 행사였다.
시각장애 체험장 바닥에는 점자블록이 깔려 있었다. 직선, 동그라미 등 요철 생김새에 따라 직진, 우회전, 정지 등 방향을 알려주는 것. 기자는 이날 바닥이 얇은 단화를 신고 있었는데도 요철 형태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신발을 아무리 바닥에 문질러대도 숙련자가 아니면 요철의 모양을 알기는 어려워 보였다.
점자블록을 5칸 정도 밟으며 이동하다 보니 갑자기 밋밋한 길이 나왔다. 방향을 알려주던 점자블록이 끊기니 당혹감은 두 배가 됐다. 국립재활원 관계자는 “이곳에서 충분히 훈련받고 가도 점자블록이 없으면 보행이 어렵다”며 “우리나라에 점자블록 없는 곳이 많다 보니 시각장애인들은 아는 길만 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공중시설 중 점자블록이 설치된 곳은 36%뿐. 그 외 장소는 이렇게 방향도 모른 채 감각에 의지해 길을 걸어가야 한다.
건널목에서는 “길을 건너가도 좋습니다”라는 음성이 들렸지만 발을 떼기 어려웠다. 언제 신호가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다가 길을 건너기까지 1분이 넘게 걸렸는데 나중에 보니 그 거리는 2m도 안 됐다. 실제 도로는 상황이 더 열악하다. 이 정도 좁은 건널목엔 신호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신호등이 없으니 안내음성도 없어 시각장애인은 건널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휠체어 체험의 경우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았다. 평지에서 손으로 바퀴를 앞으로 밀며 이동하는 것은 비교적 수월했다. 하지만 경사진 곳을 이동할 때는 헬스클럽에서 무거운 운동기구를 들 때처럼 팔에 힘을 줘야 했다. 국립재활원 관계자들은 “휠체어를 움직이는 데도 요령이 많이 필요하다”며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큰 체력 소모 없이 휠체어를 움직이는 요령을 배우는 데 최소 1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는 보조인 역시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다. 보조인이 휠체어를 위 또는 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몸을 뒤로 기대세요” “앞으로 숙이세요”라고 말하며 호흡을 맞춰야 한다. 보조자와 휠체어 탑승자의 손발이 맞지 않으면 힘을 잔뜩 사용해도 휠체어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휠체어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질 수도 있다. 지하철 등 공공시설에는 휠체어 보조법을 숙지하고 있는 보조인이 상주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날 국립재활원 방문 행사에서 복지부는 장애인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장애인 연금 수급자 비율을 지난해 60.31%에서 70%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 기초급여액도 1.8배로 높이기로 했다. 문 장관은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과 협력해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