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93분이면 광주의 맛 “녹는다 녹아, 이게 떡갈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1일 03시 00분


[기차타고 떠나요! 신토불이 맛기행]<3>호남선 KTX와 송정 떡갈비

광주 광산구청 앞 ‘송정리 떡갈비 골목’. 200여 m 거리에 떡갈비 식당 14곳이 늘어서 있다. 광산구 제공
광주 광산구청 앞 ‘송정리 떡갈비 골목’. 200여 m 거리에 떡갈비 식당 14곳이 늘어서 있다. 광산구 제공
2일 호남선 고속철도(KTX)가 개통되면서 수도권과 광주가 한층 가까워졌다. 호남선 KTX가 개통하기 전 서울 용산역에서 광주행 KTX를 타면 2시간 48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젠 최단 1시간 33분, 평균 1시간 47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종전보다 무려 1시간이나 단축된 것이다. 오전에 호남선 KTX를 타고 가 남도의 맛과 멋을 즐기고 오후에 서울로 돌아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승객들도 ‘속도혁명’에 따른 생활 전반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광주송정역은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역이다. 1913년 전남 나주∼송정리 호남선 철도 공사로 역이 생긴 이후 오랫동안 광주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기차역의 긴 세월만큼이나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주변 맛집은 아날로그 감성을 선사한다. 광주송정역 인근에도 깨소금처럼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별미가 있다. 바로 ‘송정 떡갈비’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함께 다진 후 양념에 버무려 숯불에 구워낸 송정 떡갈비.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함께 다진 후 양념에 버무려 숯불에 구워낸 송정 떡갈비.
송정 떡갈비는 한정식 오리탕 보리밥 김치와 함께 광주의 5미(味)로 꼽힌다. 광주송정역에서 걸어서 2, 3분 거리에 식당 14곳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떡갈비 골목이 있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식당에서 풍기는 기름지고 고소한 냄새에 자연스레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입에 침이 한가득 고인다. 송정리 향토떡갈비 법인협의회 최영환 총무(60)는 “KTX가 개통되고 나서 외지 손님이 늘어 점심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바쁘다”며 “개통 기념으로 보름 동안 가격을 할인했는데 반응이 좋아 추가 행사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정 떡갈비는 60여 년 전 송정리 오일장 주변에서 밥집을 하던 고 최처자 씨로부터 시작됐다. 최 씨는 이가 튼튼하지 않은 시가 어르신을 위해 쇠고기를 다지고 다양한 채소와 양념을 섞어 넓적하게 구워 드렸는데, 집에서만 해먹기엔 맛이 매우 좋아 식당에서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떡갈비는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의 인기 메뉴가 됐다.

원래는 쇠고기를 다져 마늘, 파, 생강, 배 등 20여 가지 양념에 버무린 뒤 연탄불에 구워냈다. 하지만 지금은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7 대 3 또는 5 대 5 비율로 섞는다. 예전처럼 쇠고기만 사용한 것은 ‘한우 떡갈비’라고 부른다. 돼지고기를 섞은 떡갈비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었다. 외환위기로 모두가 어려울 때 쇠고기 값마저 오르자 떡갈비 가격을 인상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돼지고기를 섞은 떡갈비는 예상외로 인기가 좋았다. 맛이 훨씬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손님도 이전보다 더 늘었다. 굽는 법도 달라져 연탄 위에 참숯을 올린 불을 사용하거나 가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떡갈비는 양념장을 발라가며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굽는다. ‘이조송정떡갈비’ 주인 박언희 씨(44·여)는 “떡갈비의 감칠맛 비결은 바로 양념장에 있다”며 “10여 가지 재료로 만드는데 업소마다 1급 비밀이어서 남에게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주송정역 일대 식당가에선 뼈국물을 함께 내놔 떡갈비의 풍미를 배가시킨다. 돼지 등뼈를 토막 내 무와 함께 푹 삶아 내는데, 국물 맛이 개운해 기름진 떡갈비를 먹을 때 한술 떠먹으면 그만이다. 떡갈비를 먹은 후 식사로 즐기는 생고기 비빔밥도 별미다. 가격은 떡갈비가 1인분 200g에 1만1000원, 한우 떡갈비는 1만9000∼2만2000원, 생고기 비빔밥은 7000원이다.

송정 떡갈비를 먹으러 갈 때 기왕이면 3일과 8일로 끝나는 날에 서는 송정 오일장에 맞춰 가면 시골장터 구경하는 맛까지 챙길 수 있다. 송정 오일장 인근에는 맛있는 국밥집이 많다. 가마솥에서 푹 우려낸 사골 국물에 머리고기 내장 순대 등을 넣어 내놓는 국밥은 값(5000원)도 괜찮고 양도 푸짐해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충분하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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