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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주제는 ‘안전’]<73>아이들에게 마음놓고 놀 곳을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에 사는 손모 씨(31·여)는 집 앞 놀이터만 보면 분통이 터진다. 1년 전 안전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뒤 아직까지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는 탓이다. 미끄럼틀 계단 손잡이는 파손된 지 오래고, 구름다리 바닥의 나무 받침대도 사라져 1.5m 아래 바닥이 훤히 보인다. ‘출입금지’ 푯말을 세워 놨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갈 때가 많다. 손 씨는 “다섯 살 아들은 매일 나가 놀겠다고 보채는데 행여 다치기라도 할까 봐 매일 마음을 졸인다”고 했다.
아파트 놀이터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1월 전국 3만6094개 아파트 놀이터 중 1456곳의 사용을 금지했다. 안전검사를 통과하지 못했거나 아예 검사를 받지 않은 곳이다. 어른의 안전불감증 탓에 아이들만 뛰어놀 곳을 빼앗겼다. 취재진이 찾은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관리인은 “가구마다 아이들이 줄면서 놀이터를 보수할지, 공원으로 용도를 변경할지 주민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고 방치 이유를 설명했다.
그 사이 놀이터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2011년부터 3년 동안 접수된 7∼14세 중상해 안전사고 548건 중 놀이터 사고는 128건(23.4%)에 달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안모 씨(35·여)는 올해 초 아이가 그네에서 떨어져 다친 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보수 공사를 요청했다. 두 달 뒤에야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다. 관리사무소 측은 “부속이 없어 고칠 수 없다”며 보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집 앞 놀이터가 못 미더운 부모는 시간과 돈을 들여 사설 놀이터를 찾는다. 19일 ‘모래’를 테마로 한 서울 용산구의 한 사설 놀이시설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3∼10세 아이 20명이 고운 모래가 깔린 놀이터에서 안전사고 걱정 없이 뛰어놀았다.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표정도 밝았다. 두 아들을 데려온 조혜수 씨(39·여)는 “동네 놀이터는 안전사고나 모래 위생이 걱정돼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 3월 말 문을 연 뒤 3주 동안 1800명이 넘는 어린이가 이 시설을 찾았다. 안전사고를 우려해 두 시간 동안 20명으로 입장을 제한할 정도다.
하지만 민간 놀이시설이 집 앞 놀이터의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모래 체험을 마치고 나온 윤관 씨(41)는 “매주 입장료를 내며 사설 놀이터에 오는 건 부담스럽다. 안심하고 갈 수 있게 자치단체가 집 앞 놀이터를 관리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안전처는 안전검사에 통과하지 못한 놀이터를 꾸준히 줄여 나갈 방침이다. 하지만 120여 개 놀이터는 재건축 등의 이유로 보수가 힘든 상황이다. 임경숙 국민안전처 기획총괄팀장은 “위험한 놀이터가 장기간 방치되지 않도록 이용금지 한 달 내 시설을 개선하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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