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이르면 상반기(1∼6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간 합병을 재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고강도 사업 구조조정이 상당 부분 진행됐고 두 회사의 주가 하락으로 대규모 주식매수청구권(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지분을 일정한 가격에 팔 권리) 행사 부담도 줄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27일 “현재 계획상으로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을 5, 6월 중에 재추진하는 걸로 돼 있다”며 “그동안 (삼성엔지니어링) 부실도 많이 걸러냈고 구조조정도 꽤 진척돼 이번에는 잘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은 삼성 지배구조와 직결되진 않지만 2013년부터 진행된 그룹 사업구조 재편 작업의 중요한 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연내에 마무리 짓기로 한 삼성그룹으로서는 마냥 미뤄둘 수만은 없는 숙제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10월 각각 주주총회에서 양사 간 합병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포함한 반대 주주들이 총 1조6000억 원대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자 합병을 포기했다. 당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시장에서 판단한 주가보다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 이유였다.
삼성그룹은 이후 ‘선 합병, 후 구조조정’에서 ‘선 구조조정, 후 합병’으로 방침을 수정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적극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이 낮은 사업들을 걸러냈다. 본사 임직원 수는 2013년 말 7135명에서 지난해 말 6888명으로 247명(3.6%) 줄었다. 2013년 1조280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던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에는 1618억 원 흑자로 돌아섰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올해 본사와 해외 지사를 포함한 전체 인력을 8255명에서 7550명으로 705명(8.5%)이나 줄일 예정이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이 1830억 원으로 2013년 9142억 원의 5분의 1로 줄었다. 조선업계 불황 탓도 있었지만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7500억 원의 공사손실충당금을 쌓아둔 것이 결정적이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지난해 최대치의 충당금을 쌓아둬 추가 손실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주가는 27일 각각 1만9450원, 4만2550원으로 마감했다. 1차 합병 시도 당시 주식매수청구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해 11월 17일보다 각각 24.5%, 30.0%나 떨어진 가격이다. 그러나 올해 1월 말을 기점으로 양사 주가 모두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양사가 새롭게 정할 주식매수청구 가격이 지난해 11월보다 낮게 책정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주가가 상승할 여지는 이전보다 커진 것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주가 흐름은 지난해 10, 11월보다는 양사 합병에 훨씬 우호적인 상황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재추진을 가로막는 장벽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공사가 진행 중인 삼성엔지니어링의 아랍에미리트 카본블랙 프로젝트,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발전 플랜트 등에서 추가 부실이 나올 가능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엔지니어링의 올해 1분기(1∼3월)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1조7728억 원, 21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0.0%, 29.4% 줄었다.
기획재정부가 입법을 준비 중인 ‘사업재편지원특별법’도 변수다. 재계는 최근 이 법안에 주식매수청구권의 ‘주식매수 의무기간(합병회사가 주식을 사들여야 하는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12개월로 연장해 달라고 건의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회사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으로서는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입법 시기 등을 따져본 뒤 사업재편지원특별법 통과 이후로 합병을 미룰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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