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10시 광주고법 201호 법정.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던 형사5부 서경환 부장판사는 한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선내 대기 안내방송을 듣고 질서정연하게 대기하던 승객 304명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선장 혼자만 탈출해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판결문 말미를 읽은 뒤였다. 2분여 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서 부장판사는 헛기침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방청석에 앉은 유가족들도 눈물을 훔쳤다. 잠시 후 서 부장판사는 “세월호 사건은 극심한 국민 분열을 초래하고 대한민국의 국격을 추락시켰다. 이런 참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70)에게 항소심에서 ‘살인죄’가 인정돼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대형 인명 사고 관련 피고인에게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일을 하지 않음)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된 건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검찰 관계자는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선장은 세월호 침몰 당시 퇴선 명령 없이 혼자 탈출한 뒤 스스로 신분도 밝히지 않았다”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살인죄가 아닌 유기치사상 혐의 등만 인정해 징역 36년형을 선고했었다.
재판부는 “퇴선 시기를 결정하는 선장은 승객 구조에 대해서는 법률상 사실상 유일한 권한자이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며 “이 선장이 책임을 포기해 승객 461명을 선내에 방치함으로써 304명이 숨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 선장의 행위는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장이 구조헬기를 타고 먼저 빠져나오고 당직의사가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버리고 탈출한 것과 같은 살인행위”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로 인해 학생들은 꽃다운 나이에 삶을 마감했고, 유족과 실종자 가족, 생존자 등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슬픔과 공포를 안겨줬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1심 첫 공판 이후 10개월간에 걸쳐 37차례나 진행된 1, 2심 재판에서 최대 쟁점은 이 선장이 탈출 직전 승객 퇴선 명령을 했는지였다. 항소심 재판부의 살인죄 판단 기준도 이 선장이 탈출 직전 2등항해사에게 승객 퇴선 명령을 지시했는지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고 전후의 정황, 관련자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선장의 퇴선 명령 지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선원 14명은 1심 때보다 다소 줄어든 징역 1년 6개월∼12년형이 각각 선고됐다. 유가족들은 “이 선장에게 살인죄가 인정된 건 환영하지만 선원들의 형량이 줄어든 건 아쉽다”고 말했다.
대형 인명 사고에 대해 과거에도 관련자들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검찰이 기소한 사례는 있지만 법원이 이를 인정한 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1970년 ‘남영호’ 침몰 당시 검찰은 선장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했지만, 법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죄만 인정됐다. 검찰 관계자는 “대형 사고에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인정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처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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