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필자는 간간이 귀농·귀촌 관련 강의차 서울과 지방을 오간다. 주로 귀농·귀촌에 관심이 많거나 이를 준비 중인 도시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낭만적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음을 보게 된다. 시골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면 이후 전원으로 이주해도 시골 정착에 실패할 공산이 크다. 도시인의 로망인 전원생활, 그 터전인 시골에 대한 몇 가지 착각을 하나씩 짚어보자. ○ 첫 번째 착각: 시골엔 물이 많다?
최근 강원 H군으로 귀농한 K 씨(50)는 물 때문에 낭패를 봤다. 마을을 끼고 도는 제법 큰 강이 있고 집 옆으로는 수량이 풍부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물에 대해선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더구나 산 좋고 물 좋다는 강원도 아닌가! 하지만 정작 지하수를 얻기 위해 땅속 100m가량을 팠는데도 필요한 양의 물을 얻지 못했다. 그는 “물이 귀한 시골 땅이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며 사전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 두 번째 착각: 시골은 깨끗하다?
3년 전 충북 G군으로 귀촌한 P 씨(45)는 오래지 않아 청정 환경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했다. 봄 농사철이 다가오면 하천변이나 계곡 옆에도 가축 두엄을 마구 쌓아놓아 비가 오면 그대로 하천으로 흘러들어간다. 또 밭둑 어귀에는 수확 후 방치해놓은 검정 비닐과 폐농자재가 그대로 쌓여 나뒹군다. 여름 휴가철에는 도시인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로 넘쳐난다. 그는 “시골은 얼핏 보면 깨끗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고 일침을 놓았다.
○ 세 번째 착각: 시골은 조용하다?
지난해 경북 S시의 한 시골마을 도로변에 위치한 전원주택을 매입한 귀촌인 L 씨(55)는 처음에는 시골의 호젓함을 한껏 즐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끔씩 다니는 차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철에는 트랙터, 경운기, 트럭 소리가 요란하다. 이웃집의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도 이젠 신경에 거슬린다. 그는 “시골이 도시보다 덜 시끄러운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생각만큼 조용한 곳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네 번째 착각: 시골에 살면 건강하다?
강원 최북단의 한 산골마을로 귀농한 지 10여 년 된 P 씨(49). 그는 “처음 시골에 왔을 때는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사는 산골사람들은 다들 건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살아보니 당뇨, 각종 암 등 아픈 이들이 너무 많아 크게 놀랐다”고 전했다. 다른 시골마을 또한 사정은 비슷하다. P 씨는 이에 대해 농사일이 육체적으로 고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농약을 남용하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 다섯 번째 착각: 시골생활은 여유롭다?
2012년 퇴직 후 전남 J군으로 귀농한 C 씨(59)는 봄이 와도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여유가 없다. 3월부터 11월까지는 농사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태풍이 오면 작물 걱정, 시설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그는 “농번기에는 마을 하천에 지천인 물고기를 잡을 시간도 없어 가끔 매운탕을 사먹기도 한다. 시골생활을 ‘느림의 미학’이라고 말하지만 이를 즐길 수 있는 귀농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위에 든 ‘착각’ 사례가 모든 시골에, 모든 시골사람에게 다 적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직접 시골에 살아보니 애초 생각한 대로 ‘조용하고’ ‘깨끗하고’ ‘여유롭고’ ‘건강하고’ ‘물이 많은’ 전원생활을 누리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골생활의 본모습은 도시인들이 대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는 농촌에서 해를 더할수록 더욱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봄을 맞아 귀농·귀촌박람회나 지자체, 민간단체, 대학 등에서 실시하는 귀농·귀촌 관련 교육에 참여하려는 도시민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전원생활에 대한 뜨거운 갈망과 열기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전원생활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시골에 대한 막연한 착각에서 깨어나 실태를 바로 알고서 전원행을 결행해야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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