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유학 8개월… “학교가 좋아졌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4일 03시 00분


5일 어린이날… 우열이의 아주 특별한 운동회

서울에서 산골 학교로 유학 온 이우열 군(위쪽 사진 오른쪽)이 지난달 30일 운동회에서 엄마 아빠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우열이 부모는 4개월 만에 만난 아들의 의젓한 모습에 하루 종일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아래쪽 사진은 우열이가 지난달 23일 광주에서 열린 ‘영산강 환경사랑 띠 엮기 그림 공모전’에 나가 대상 다음인 최우수상(2등)을 받은 그림. 강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서울에서 산골 학교로 유학 온 이우열 군(위쪽 사진 오른쪽)이 지난달 30일 운동회에서 엄마 아빠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우열이 부모는 4개월 만에 만난 아들의 의젓한 모습에 하루 종일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아래쪽 사진은 우열이가 지난달 23일 광주에서 열린 ‘영산강 환경사랑 띠 엮기 그림 공모전’에 나가 대상 다음인 최우수상(2등)을 받은 그림. 강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오늘이 운동회 날인데 엄마 아빠는 언제 오시지?’

전남 강진군 옴천초등학교에 다니는 이우열 군(12·5학년)은 지난달 30일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평소 밥 한 공기를 후딱 비우곤 했지만 조바심 때문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우열이는 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오곡마을 주민 엄영숙 씨(54·여)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다. 운동회가 열리는 학교 옆 친환경문화센터로 걸어가면서도 우열이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문화센터 강당에 들어서면서 엄마 아빠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시무룩해진 우열이 얼굴이 환해진 건 공굴리기 시합을 막 하려던 때였다. ‘야! 엄마다.’ 강당 한쪽에서 손을 흔드는 아빠와 엄마를 보자 우열이는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우열이가 이 학교로 전학 온 것은 지난해 9월. 우열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수업에 방해가 될 정도로 산만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우열이 어머니 박윤경 씨(42)는 학교에 불려가는 일이 잦았다. 지난해 6월 우열이 손을 잡고 찾은 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라고 진단했다. 담임교사는 전학을 권하며 박 씨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옴천초등학교장 명의의 ‘힐링 산촌 유학생 모집 안내문’이었다. 박 씨는 옴천초교가 산골에 있는 작은 학교라는 게 일단 마음에 들었다. ‘자연의 품에서 아토피를 치유할 수 있다’는 문구도 우열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엄마 고마워요”… 우열이의 편지 서울에서 산골 학교로 유학 간 우열이는 어버이날을 맞아 쓴 편지에서 “미술을 싫어했는데 이곳에 와서 많이 바뀌었다”며 엄마 아빠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엄마 고마워요”… 우열이의 편지 서울에서 산골 학교로 유학 간 우열이는 어버이날을 맞아 쓴 편지에서 “미술을 싫어했는데 이곳에 와서 많이 바뀌었다”며 엄마 아빠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우열이 부모는 지난해 8월 옴천초교에서 2박 3일간 열린 ‘힐링 유학 캠프’에 참가했다. 우열이는 잠자리채를 들고 하루 종일 들판을 뛰어다녔다. 다른 아이들과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으며 어울렸다. 우열이는 아까시나무 잎을 떼어낸 줄기로 엄마 머리카락을 감는 ‘아까시 파마’를 해주기도 했다. 캠프가 끝나는 날 아버지 이근익 씨(42)가 우열이에게 물었다. “아빠 엄마와 떨어져서 살 수 있겠니?” 우열이 대답은 짧고 명료했다. “아빠, 여기가 너무 좋아요.”

우열이는 지난달 23일 광주에서 열린 ‘영산강 환경사랑 띠 엮기 그림 공모전’에서 초등부 200여 명 중 최우수상(2등)을 받았다. 3시간 동안 꿈쩍 않고 그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간 교사들도 놀랐다. 우열이 엄마는 “그림 그리기를 유난히 싫어했는데 대회에 나가 상을 탔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다”며 “아토피가 사라진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아이가 의젓해져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박 씨는 그때 ‘모집 안내문’이 우열이를 살린 ‘구세주’였다고 웃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옴천면은 주민 787명으로 전국 면 단위 가운데 11번째로 작다. 그 흔한 다방도, 문방구도, 이발소도 없다. 산골 오지(奧地)의 옴천초교에는 우열이처럼 도시에서 온 유학생이 11명이나 된다. 전교생이 30명이니 3명 중 1명이 ‘유학생’이다. 심지어 올해 3월엔 중국에서도 유학생이 입학했다. 올해 1학기에 4, 5명이 더 전학 올 예정이다. 청정 자연환경을 활용한 ‘힐링 교육’이 입소문이 나면서 일어난 변화다. 3년 전만 해도 폐교 위기에 몰렸던 이 학교는 학생이 늘면서 올해 겹경사를 맞았다. 17년 만에 교감이 부임하고 교사 2명이 증원됐다. 교실도 1칸을 늘려 새로 지었다.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산촌 유학’은 이 학교 임금순 교장(55·여)의 아이디어다. 2년 전 공모제 교장으로 부임한 그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꿈을 키우도록 했다. 아이들은 중간 놀이시간에 3km에 이르는 논둑길을 걷는다. 이름 모를 들꽃을 보고 정신이 팔려 있어도 나무라는 선생님은 없다. 학교 뒷산에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야외수업’을 한다. 여름밤에는 반딧불이를 찾아 나서고, 보리가 영글면 보리를 구워 먹고 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한다. 임 교장은 “교문을 나서면 만나는 게 온통 놀이터이고 자연이 교과서이다 보니 아이들의 감성이 풍부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때 묻지 않은 동심 때문일까. 학교 복도에는 아이들이 각종 미술대회에서 상을 탄 작품들이 줄줄이 걸려 있다. 학교가 살아나면서 인근 마을도 활기를 띠고 있다. 산골 유학을 계기로 귀농이나 귀촌을 하는 젊은 부모들도 생기고 협동조합도 만들어졌다.

강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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