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의 모델들은 머리에 가채를 썼고, 샤넬 클래식 백은 색동으로 물들었다. 조그마한 나전칠기 상자가 핸드백이 됐고, 한복 치마는 샤넬의 고급 드레스로 변신했다.
4일 오후 8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는 프랑스 하이패션과 한국 전통문화, 케이팝 문화가 어우러져 세계 패션계에 한 획을 긋는 행사가 펼쳐졌다. 이날 열린 샤넬의 2015·2016 크루즈 컬렉션은 금세기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히는 카를 라거펠트의 ‘한국에 대한 헌사’였다.
샤넬이 서울에서 정기 컬렉션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루즈 컬렉션은 주로 겨울에 따뜻한 여행지로 떠나는 여행객을 위한 패션을 선보이는 자리다. 샤넬은 2000년부터 매년 5월 프랑스 파리와 생트로페, 이탈리아 베네치아 등 부호들의 여행지에서 크루즈 컬렉션을 열어 왔다. 샤넬은 이날 행사에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은 전통과 현대적 감각, 최첨단 기술이 조화를 이룬 도시”라며 한국의 유교 및 불교 문화, 현대적인 빌딩과 최첨단 기술 등을 소개해 왔다.
라거펠트가 이날 공개한 서울 크루즈 컬렉션은 그가 서울과 한국문화, 아시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답은 전통적이면서 새로운 문화가 꽃피는 ‘컬러풀’ 도시. 무대부터 빨강, 파랑, 노랑, 녹색의 원색의 동그란 의자로 꾸며졌다. 한복의 원색적인 색동이자 다채로운 케이팝 문화를 상징한 것이다. 의상에도 가채와 나전칠기식 화려한 자수를 반영하면서도 형광 빛 진한 핑크 립스틱과 원색적인 액세서리로 케이팝 가수의 의상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라거펠트는 G드래곤과 씨엘 등 한국 가수들을 뮤즈로 삼고 있다.
라거펠트는 지난해 10월 서울로 장소가 결정되자마자 한국지사에 한국 문화의 모든 것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복, 보자기, 나전칠기, 한국 여성의 전통 머리모양 등 자세한 자료를 모두 일일이 검토하며 디자인한 것이다.
한편 이번 행사는 서울의 글로벌 ‘홍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행사에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지젤 번천, 틸다 스윈턴 등 세계적인 스타뿐 아니라 카린 루아펠드 전 보그 파리 편집장 등 패션계 인사들이 대거 방한해 자리를 빛냈다. 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 호텔롯데 상무,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 빅앤트 대표 등 국내 재계 인사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서울 크루즈 컬렉션이 한국 문화를 기반으로 하되 중국 고객을 의식했다는 평도 나왔다. 샤넬 측은 “(아시아의 전통에) 현대적인 정신을 과감하게 더해 아시아의 세련미를 재해석해 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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