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변영욱]언론 격세지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7일 03시 00분


변영욱 사진부 차장
변영욱 사진부 차장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이 지속되던 지난달 30일 오후 4시.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실 앞 복도 바닥에 예닐곱 명의 기자들이 노트북을 편 채 앉아 있었다. 대부분이 여기자들이었다. 마침 남자 화장실 앞이라 보기에 민망했다. 젊은 기자들이 국회 여기저기서 차가운 복도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 앉아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은 이제 흔하다.

시대가 바뀌면 기자들의 모습도 바뀐다. 예전에 국회를 출입하던 선배 기자들은 주로 정장 차림이었다. 이제는 그런 복장으로 취재하면 불편하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몸싸움을 해야 하는 사진기자와 영상기자들의 드레스 코드는 청바지와 등산복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군소 매체가 등장했고 1인 다역의 기자가 많아졌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요즘 국회에는 50대 초중반의 나이 지긋한 기자들이 꽤 많이 출입하고 있다.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그리고 편집장의 역할까지 한꺼번에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젊은 시절에 쓴 글은 없고 최근에 쓴 기사가 일부 검색된다. 기사 생산이 생업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조다.

이들이 팩트 한 줄, 사진 한 장을 위해 취재원을 집요하게 따라붙거나 복도에서 장시간 기다리는 모습은 잘 안 보인다. 이들은 주로 정장을 입고 중요 뉴스 인물들 옆에 바짝 붙어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함께 받는다. 마치 그 정치인의 보좌관처럼. TV와 신문을 통해 본인 얼굴이 나감으로써 고향에 있는 친구나 사업상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랑할 목적은 아니길 바란다.

취재의 룰에 대한 합의가 안 돼 기자들 사이에서 왕왕 마찰이 일어난다. 지난달 말에는 야당의 아침 회의 도중 일간지 기자와 군소 매체 대표가 큰 소리로 말싸움을 벌였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군소 매체 대표를 대중 매체 기자가 밀어서 취재를 방해했다’는 이유였다. 회의 도중에 고성이 났고 회의장에서 취재진이 철수한 이후 복도에서까지 욕설은 이어졌다. 함께 품위가 손상되는 것을 우려한 기자들이 몸싸움을 말리려고 하자 군소 매체 대표는 바닥에 누워 버렸다. 결국 119와 112를 부른 후에야 소동이 끝났다. 궁금해서 대표 겸 기자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1주일 전에는 미국 영화 시사회장에서 입장을 막는 경비원과 시비가 붙어 112를 불렀다는 뉴스가 있었다. 국회 밖의 경제 쪽과 연예 분야 쪽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부정적인 의미로 이름이 나 있었다.

누구나 매체를 만들 수 있고 국회 출입 자격을 얻으면 품위를 손상시켜도 별다른 제재를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어처구니없는 촌극은 앞으로도 빚어질 듯하다. 더불어 시민들이 느끼는 ‘기자의 품위’도 더 떨어질 것이다. 함께 품위를 지키자고 제안하는 데 “언론탄압을 한다!”는 거친 답변과 막무가내 행동이 나오니…. 과거의 언론 환경과 비교하며 격세지감을 느끼는 기자가 비단 나 혼자일까.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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