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나눠주고 떠났지만 누군가의 삶속에 살아있을…
장기기증인 부모들 ‘특별한 어버이날’… 서울시민청서 8일부터 추모전시회
3년 반 전 세상을 떠난 아들 기석이가 액자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손으로 액자를 가만히 쓰다듬어 보는 아버지 김태현 씨(55). 김 씨는 이제 울지 않는다. “어버이날인데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은 기석이에게 김 씨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어디에 있어도 너는 내 아들이야. 누구보다 훌륭하고 멋진 내 아들, 사랑해.”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민청 갤러리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자녀를 부모가 추모하는 특별한 전시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기석이처럼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장기 기증인을 추모하는 전시회다.
개막을 하루 앞두고 갤러리를 찾은 김 씨는 “기석이가 준 마음의 카네이션을 벌써 가슴에 고맙게 단 기분”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회장과 선도부장을 번갈아 하고 집에 오면 학습지 회사의 지국장인 어머니를 도와 가끔 전단을 돌리기도 하던 기석이.
김 씨는 “일찍 퇴근한 날 기석이와 함께 전단을 돌리고 아르바이트비를 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얘기했다. 전단을 돌리고 키가 아버지보다 훌쩍 더 커 버린 기석이와 친구처럼 어깨동무하고 집으로 올 때 자신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아버지였다.
그런 기석이는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1년 12월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쓰러졌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처음 찾아간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받지 못하고 병원을 옮겨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돼 결국 뇌사 상태에 빠졌다. 기석이는 “아빠, 머리가 너무 아파요”라는 문자메시지 말고는 다른 말을 남기지 못했다. 가족 누구도 상상 못 했던 비극. 김 씨는 허망하게 기석이를 보낼 수 없어 장기 기증을 선택했다고 했다. 기석이는 6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부모 품을 떠났다.
김 씨는 “지금 곁에 없지만 장기를 기증하고 떠났으니까 누군가의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주변에서 ‘좋은 일을 했다’며 칭찬을 많이 해서 기석이가 지금도 효도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렇게나마 아들을 떠올릴 수 있어 다행스럽다며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8일부터 17일까지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주최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기석이를 비롯한 장기 기증인 40명의 얼굴이 담긴 액자 형태의 추모비와 이들 덕분에 새 삶을 찾은 이식인들의 편지가 전시된다. 추모비 주인공 가운데 70%가량은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가 보낸 사진이다. 장기기증운동본부는 8일 오전 개막식에서 김 씨 등 장기 기증인 가족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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