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히어 애프터’는 영 능력을 소재로 했다. 맷 데이먼이 죽은 사람의 메시지를 듣는 영매로 나온다. 손을 잡으면 그 사람이 떠나보낸 이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남은 이에게 해주고픈 말이 들려온다.
꼭 해야 했던 말, 그러나 하지 못했던 말을 매개로 죽은 자와 산 자간에 교감이 이뤄진다. 살다보면 꼭 해야 할 말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짐작할 거라고 믿거나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집에서 만큼은 모두 잊은 채 쉬고 싶다. 소파에 벌렁 누워 TV를 켜고 멍하니 본다. 그가 추구하는 바는 ‘편안함’이다.
아내는 그런 남편과 대화를 시도하지만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소통을 통한 ‘행복’이다. 그러나 단절감의 높은 벽만 확인할 뿐이다.
남편이 생략한 말은 “나 지쳤으니까 기다려줘”일 것이다. 아내 또한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까 얘기 좀 들어줘”라고 원하는 바를 전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목적이나 맥락이 명확할 때에야 남편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반응의 정도를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부부가 서로에게 해야 할 말은 건너 뛴 채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직행하고는, 그로 인해 야기되는 불만을 쏟아낸다. 탓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관계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알기 어렵게 된다.
다툴 때마다 “(생략한 부분을) 꼭 말로 해야 알아듣느냐”고 답답해하는데 사실, 그런 능력은 영화 속의 영 능력자도 웬만해서는 발휘할 수 없다. 맷 데이먼도 손을 마주 잡아야만 영혼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음을 읽는 능력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밝음과 어두움을 함께 가지고 있기 마련이며 부부 사이라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말 안 해도 알아서 이해해주겠거니’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들키기 싫은 점마저 간파당할 리스크를 자청하는 셈이기도 하니까.
영화의 맷 데이먼은 요리교실에서 친해진 여성의 간청에 못이겨 죽은 아빠의 말을 전해주지만 그 과정에서 미처 예상치 못했던 괴로운 기억을 떠올린 그녀는 떠나버리고 만다.
이따금 이심전심 통하는 부부를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으나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흉금 없는 대화를 오랜 시간에 걸쳐 나눔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 그리고 견디는 힘이 쌓인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습관처럼 생략했던 말들부터 살려보면 어떨까. 그 몇 마디 말이 차근차근 쌓이는 과정에서 집안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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