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종석]몰라도 되지만 알면 더 좋은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1일 03시 00분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이팝나무와 아까시나무(일명 아카시아). 이 둘은 이맘때 꽃이 활짝 핀다. 꽃 색깔은 둘 다 흰색. 두 나무는 다 자란 키 높이도 20m 안팎으로 엇비슷하다. 하지만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뭇과이고 아카시아는 콩과 식물이다. 무엇보다 꽃 모양이 영 딴판이다. 이팝나무는 꽃잎이 가늘고 길게 생겼다. 이팝나무에 비하면 아카시아는 꽃잎이 훨씬 굵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청계천을 지나는데 마주 오는 부자(父子)가 주고받는 얘기가 들렸다. “아빠, 이건 무슨 나무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이 묻는다. 40대 초·중반의 아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카시아”.

스쳐 지나면서 ‘어이쿠’ 싶었다. 아빠는 모전교 바로 옆에 있는 나무 이름 표지판을 그냥 지나친 모양이다. 청계천 양옆으로 만개한 꽃을 뒤집어쓴 채 서 있는 건 이팝나무다. 멀찍이 보면 활짝 핀 꽃들이 수북이 쌓인 이밥(입쌀로 지은 밥)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밥나무로 불리다 이팝나무가 됐다는 설이 있다. 이팝나무 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그해 벼농사의 풍흉을 알 수 있다 해서 오래전 조상들이 신성하게 떠받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필자가 시골내기라 그런지 몰라도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놀다 소나기가 내리면 비를 잠시 피할 수 있게 해 준 아름드리나무는 팽나무였고, 교정 앞에 나란히 줄지어 앉은 건 둥근향나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반공 어린이’ 이승복 동상 옆에 서 있던 건 상수리나무로 기억한다.

‘영어에, 수학에, 태권도 도장까지 요즘 아이들이 알아야 하고, 다녀야 할 곳이 차고 넘치는데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그딴 나무 이름은 알아서 어디 써먹나.’ 이래 버리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런 식이면 초등학생이 알아서 어디 써먹을 만한 건 또 세상에 얼마나 되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소설가 박완서 씨(1931∼2011)가 1980년대 중반에 낸 산문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왜 (시골 아이들이) 수세식 변기의 사용법을 모르는 것만 못난이가 되고 도시 아이가 토끼풀과 괭이밥도 구별 못하는 건 못난이가 안 되나요? 어째서 어려서부터 문명의 이기를 길들이기에 익숙한 것만 잘난 것이고, 자연의 이치에 통달한 건 잘난 게 못 되나요?”

풀이름 좀 모른다고 해서 못났다고까지 몰아붙일 생각은 없다. 나무 이름 몇 개 안다고 잘났다고 할 것도 없다. 도시나 시골이나 경계 없는 인터넷에 빠져 살기 때문인지 요즘은 시골 아이들도 도시 아이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몰라도 된다. 하지만 알면 더 좋을 것 같아 하는 얘기다. 한 나절만 지나면 뒤바뀌고 달라지는, 쓰잘머리 없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줄줄 꿰는 것보다야 집 앞의 꽃, 나무 이름 하나 더 아는 내 아이가 훨씬 더 근사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오는 주말, 어린 자녀들과 함께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는 부모라면 식물도감 한 권쯤 손에 들고 나서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wing@donga.com
#이팝나무#아카시아#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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