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경남 도정(道政)이 위기다. 홍준표 도지사가 ‘성완종 리스트’에 얽힌 지 한 달. 사안 자체에 비해 세간의 관심은 과한 편이다. 홍 지사의 독특한 캐릭터, 그의 가볍지 않은 무게 탓도 있다. 삼각파도와 마주한 그는 11일 오전에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결백을 주장했다. 특히 “도정은 흔들림 없다”고 누차 밝혔지만 흰소리로 보는 시각은 상존한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도민들은 전에 없이 심란하다. 홍 지사에 대한 호불호와는 다른 문제다. 경남은 민선 20년 동안 ‘대권병’에 걸린 도지사 2명이 중도 사임한 유일한 광역단체다. 김혁규(2003년 12월 15일 사임), 김두관(2012년 7월 6일 사임) 두 사람은 임기를 절반이나 남겨 놓고 지사직을 걷어찼다. 도정은 수렁에 빠졌고 행정에 대한 도민 신뢰도 떨어졌다. 당시 선장 없는 난파선에서 도정을 챙긴 것은 행정부지사를 중심으로 한 공무원들이었다. 물론 현상 유지마저 어려울 정도로 한계는 뚜렷했다.
김두관 전 지사가 떠난 자리를 메운 홍 지사도 대권욕 만큼은 뒤지지 않아 보인다. 다만 현재 상황을 놓고 볼 때 스스로 사임이냐, 타의(他意)에 의한 업무 차질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단 불구속 기소가 유력하지만 아직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다. 최악의 상황은 피한다 하더라도 그의 추진력은 상당 부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야권과 반대 측 총공세도 매섭다. 대권 도전 가도에서 복병을 만난 그에게 예전의 신명을 기대하긴 어렵다. 홍 지사의 돌파력과 조직 장악력이 남다르긴 하지만.
그래서 다시 직업공무원이다. 이 시점에서 340만 도민들이 신뢰를 보내야 할 대상은 4270명의 경남도 직원이다. 그들은 ‘경남 미래 50년 사업’, 진해 글로벌 테마파크, 지역별 역점 시책 등을 잘 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챙겨야 한다. 그것이 ‘국민(도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도리다.
누군가는 가끔 도지사 눈에 들어 의외의 영전도 한다. 눈밖에 나거나 오해를 받아 한직으로 밀린 경우도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의 시선은 극과 극이다. 홍 지사든, 그 누구든 어차피 단체장은 한시적이다. 시간 공간적으로 모두 그렇다. 결국은 떠난다. 임명직 선출직을 통틀어 지방과 분권을 외치던 도지사들은 대부분 서울로 갔다.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갈 공무원들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중요한 이유다. 그들이 합심하고 시군 직원 1만8530명, 도의회를 비롯한 유관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도정 안정이 가능하다.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홍 지사와 ‘1억 원 전달자’라는 윤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 외엔 잘 모른다. 영원히 규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 홍 지사가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성완종에 대한 잔해(殘骸) 수사’로 규정했듯 오랫동안 사법적 잔해만 우리 주변을 맴돌며 입에 오르내릴 공산이 크다. 법정 다툼이 시작된다면 꽤 오래갈 것이다. 도정이 힘겨운 상황에 놓인 지금이야말로 경남의 직업 공무원들이 저력을 보여 줄 좋은 기회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기에 도민들의 기대가 그들에게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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