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교감 대신 “더 빨리, 더 많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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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주제는 ‘문화예절’]<87>박물관 교육 흐리는 부모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에서 차분하게 전시물 체험을 해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하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을 채근해 차분한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에서 차분하게 전시물 체험을 해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하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을 채근해 차분한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최근 박물관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다. 박물관에서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유물을 실제로 접하는 산 교육이 가능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이 어린이들을 위한 맞춤형 전시 교육을 위해 어린이박물관을 따로 두고 있다.

이처럼 교육 공간으로서 박물관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지만 자녀들이 유물을 바로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이끌 책임이 있는 부모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기 자녀의 지식 습득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들의 이기적인 행태가 아이들의 참교육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

예컨대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박물관의 문화재 교육 프로그램에 저학년이나 심지어 미취학 아동을 무리하게 집어넣으려는 부모가 적지 않다. 마치 영재교육을 시키듯 다른 아이보다 자기 아이를 더 많이 가르치겠다는 부모들의 욕심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최명림 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팀 학예연구사는 “자기 아이는 한글에 영어까지 할 수 있다면서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어린이를 취학 아동 대상 프로그램에 넣어 달라고 떼를 쓰는 부모들이 있다”며 “결국 수준 차 때문에 아이들이 교육에 흥미를 잃고 딴짓을 하거나 떠들기 일쑤”라고 말했다.

박물관 전시장에서 시험을 치르듯 자녀들을 다그쳐 주변 분위기를 흐리는 부모도 적지 않다. 많은 학교가 단기 방학에 들어갔던 지난주 연휴 기간에 찾은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에서는 엄마들이 인기 있는 전시물 앞에서 미리 줄을 서 있고 큰 소리로 아이를 부르며 “빨리 다른 곳도 둘러보라”며 채근하는 모습이 왕왕 눈에 띄었다. 관심 있는 볼거리를 발견하고 진득이 지켜보던 다른 아이는 마지못해 엄마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옆에서 전시를 지켜보던 한 외국인 관광객은 눈살을 찌푸렸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박신영 씨(37)는 “모처럼 박물관에 나온 김에 아이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은 이해된다”면서도 “엄마들이 줄을 서 있고 아이들을 풀어 놓으니 다른 관람객을 방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박물관 교육은 속도전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통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진정한 박물관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보다 전통문화와 예술에 대한 정서적 교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혜진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아이들은 여러 번 반복해 경험해야만 사물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며 “자녀들이 스스로 박물관을 즐길 수 있도록 부모들이 욕심을 버리고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문화예절#박물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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