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의 손을 꼭 잡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6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공원 길을 걷고 있다. 서초구는 이달을 시작으로 매달 1회씩 노인들을 대상으로 산책봉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서초구 제공
안순자 할머니(77)는 서울 서초구의 한 지하방에서 혼자 산다. 평범한 중산층 주부로 살던 안 할머니의 불행은 10여 년 전 시작됐다. 큰아들과 며느리가 거의 동시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 설상가상으로 빚보증을 잘못 선 남편과 ‘황혼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안 할머니는 “말년에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됐다”며 “집 밖 출입을 꺼리다 보니 외톨이가 되고 덩달아 건강도 많이 나빠졌다”고 털어놨다.
집에만 머물던 안 할머니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선 것은 6일 오전. 이달 초 서초구청으로부터 “산책을 도와 드리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날 안 할머니가 찾은 곳은 잠원동 신동근린공원. 이곳에서 그를 포함한 노인 8명이 준비운동을 했다. 모두 비슷한 또래의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구부정한 자세로 몸을 푸는 모습이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지만 표정에는 웃음과 여유가 넘쳤다. 서초구 관계자는 “가정의 달인 5월부터 생계가 어렵고 신체활동이 부족한 어르신을 위해 마련한 ‘산책도우미 봉사활동’의 첫 모임이다”라고 말했다.
서초구가 산책봉사를 기획한 건 노인의 신체 및 정신 건강에 ‘걷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서울 강남권 도심에 있는 잠원동은 차도가 많고 녹지 비율이 낮아 노인들의 운동량이 적은 편. 그래서 서초구는 산책봉사에 적합한 걷기 좋은 길을 선정하는 데 더욱 신경을 썼다. 또 여성 헬스트레이너 정다희 씨가 스트레칭과 올바른 걷기 자세 지도를 위해 나섰다. 정 씨는 “근력과 관절이 안 좋은 노인들이 무작정 많이 걷기만 하면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며 “어르신 건강에 가장 적합한 운동 방법을 알려드리려 한다”고 설명했다.
산책은 신동근린공원에서 신사역(지하철 3호선) 근처를 왕복하는 약 2km 코스로 이어졌다. 짧지 않은 거리였지만 노인 8명 모두 자원봉사자의 손을 꼭 잡고 2시간 만에 완주했다. ‘청일점’으로 참석한 신상오 할아버지(70)는 “올해 들어 갑자기 숨이 가빠져 두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며 “이렇게 (봉사자와) 함께하니 운동을 하면서도 안심이 돼 아주 좋다”고 기뻐했다.
무엇보다 이날 2시간의 산책을 통해 외로움까지 덜었다는 노인이 많았다. 안 할머니는 “혼자 살면서 이렇게 긴 거리를 대화하며 걸은 건 처음”이라면서 “한 많은 인생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봉사자 분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서초구는 앞으로 1년간 잠원동에서 산책봉사를 시범실시한 뒤 전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김영애 자원봉사팀장은 “함께하는 산책이 최근 심각해지는 도시 노인들의 우울감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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