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종로 ‘한옥은행’을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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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는 고택의 서까래-대들보가 다시 태어나는 곳
오픈 7개월… 한옥 붐에 찾는이 늘어

서울 종로구의 한 근대한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인부들이 기와를 들어내고 있다(위쪽 사진). 이렇게 모은 자재는 ‘한옥은행’에 보내져 가공을 거친 뒤 저렴한 가격에 수요자에게 공급된다. 종로구 제공
서울 종로구의 한 근대한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인부들이 기와를 들어내고 있다(위쪽 사진). 이렇게 모은 자재는 ‘한옥은행’에 보내져 가공을 거친 뒤 저렴한 가격에 수요자에게 공급된다. 종로구 제공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5·6가동. 옛 한양도성 구역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한옥 한 채가 철거되고 있었다. 80여 년 전 지어진 ‘ㄷ자’ 형태의 10칸짜리 도시형 한옥. 낡은 기와를 들어내고 켜켜이 쌓인 먼지를 벗겨내자 여전히 단단해 보이는 대들보와 기둥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폐자재를 다루는 철거 인부들의 손길이 남달랐다. 현장에서 수거한 목재와 기와를 건축폐기물이 아니라 마치 보물 다루듯 조심스레 트럭에 실었다. 이날 철거한 한옥에서는 기와 5000장, 기둥 24점, 지붕을 지탱하는 보 14점이 나왔다. 현장을 지켜보던 최호진 내셔널트러스트 기금사무국장은 “지금 트럭에 실은 것들은 여전히 쓰임새가 많은 고재(古材)”라며 “모두 ‘은행’으로 옮긴 뒤 필요한 사람들에게 싼 가격에 제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은행은 바로 한옥을 위한 은행이다. 앞서 서울 종로구는 지난해 10월 신영동의 한 공터에 철거 한옥에서 나오는 자재를 매입해 판매하는 ‘한옥은행’을 만들었다. 종로구는 전체 면적의 48%가 한양도성 안에 위치해 한옥이 많다. 지난해 집계한 한옥만 4143채. 서울의 한옥 3채 가운데 1채가 종로구에 있다. 정문수 종로구 건축과 주무관은 “최근 개발이나 건물 신축이 늘어나면서 헐리는 한옥이 급증하고 있다”며 “여전히 보존가치가 높은 한옥 목재를 재활용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시민단체(내셔널트러스트)와 협력해 한옥자재은행을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종로구 한옥은행이 취급하는 자재는 기둥, 보, 기와, 서까래, 도리(서까래를 받치는 나무), 문짝, 석재 등 10여 종. 새로 집을 짓거나 한옥 보수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시세보다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최 국장은 “소나무 등 목재는 세월을 머금을수록 단단해지고 멋스럽게 변해 방금 가공한 목재보다 훨씬 가치가 높다”며 “잘 보존된 대들보 하나만 150만∼200만 원 선에 가격이 책정된다”고 설명했다. 기둥은 보통 5만∼7만 원이고 상태가 아주 좋으면 20만 원까지 간다. 도리는 8만∼9만 원, 서까래는 1만 원 수준이다.

올 2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된 한옥은행은 지금까지 총 4채 분량의 한옥 폐자재를 확보했다. 목수 출신인 김성일 매니저(40)가 오랜 세월 동안 변형된 목재를 다듬고 방부·방충 처리를 거친 후 보관한다. 현재 건물 1채 분량의 목재를 내년 6월 완공 예정인 종로구 한옥체험관 건축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한옥은행의 활성화를 위해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올해 한옥은행에 배정된 예산은 1억 원 남짓. 이걸로 목재 매입, 인건비, 보관·관리비를 모두 충당해야 한다. 최 국장은 “작은 한옥 한 채를 정성 들여 철거하는 비용만 1500만∼2000만 원이 필요하다”며 “보다 많은 고재를 재활용하고 은행 운영을 원활히 하려면 더 많은 재정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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