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최근 치른 중간고사에서 학생들의 잇단 커닝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교양과목 ‘성(性)의 철학과 성 윤리’ 시험에서 수강생 10여 명이 서로 커닝을 하거나 시험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강의실 밖으로 나가 스마트폰에 찍어온 교재를 보고 들어와 답안을 작성했다.
통계학과 전공필수인 ‘확률의 개념 및 응용’ 과목 시험의 경우엔 더 황당하다. 일부 학생이 성적 이의제기 시간에 채점된 답안지를 돌려받은 뒤 교수 몰래 답안지를 고쳐 제출하며 성적 정정을 요구했다. 단순한 커닝이 아니라 의도된 성적 조작 시도다. 이 과목은 지난해에도 커닝 사건이 터져 재시험을 치렀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데, 이런 식으로 성적을 조작하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나라 장래가 어떻게 될 건지 걱정스럽다.
수재는 인성도 좋다?
서울대라 해서 부정행위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최고 수재들이 모인 곳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빈도도 잦아져서 파장이 크다. 흥미로운 점은 학교 안팎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다. 학교 바깥에서는 “어떻게 서울대 학생이 그럴 수 있느냐”고 하는데 서울대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커닝한 학생들을 감싸는 듯하다.
수재가 인성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은 예전에 깨졌다. 요즘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인성이 엉망인 경우가 많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치러야 할 치열한 경쟁과 스트레스가 아이들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서울대 학생은 경쟁의 승자이긴 하나 왜곡된 인성이라는 경쟁의 상흔은 남았을 것이다.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장은 지난해 서울대 최우등생 46명을 인터뷰하고 1213명의 학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수의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받아 적는 사람이 A+를 받는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점수 관리를 못 하는 아이는 서울대에 들어오기도 힘들고 들어와서도 좋은 학점을 받기 어렵다는 말이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될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책 ‘공부의 배신’을 보면 세계 최고의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예일대에서 학생을 가르쳐온 저자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우울해하고 인간관계에 서툴며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내가 불행하지 않았더라면 예일대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한 학생의 자조적 표현이 명문대생의 심리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명문대 입학의 조건은 불행
요즘 학생들은 공부와 스펙 쌓기에 항상 바쁘지만 뭔가에 저돌적으로 몰입해본 경험이 없고, 많은 사람을 알지만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연애도 잘 못 한다. 어느 학생의 말마따나 “난 항상 바빴고, 내가 관심 있는 사람 또한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은 심하게 느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의 잘못은 주변 몇 사람을 괴롭게 하는 데 그칠 뿐이지만 성공한 엘리트의 악덕은 많은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도덕불감증은 때로는 자신이 속한 집단, 나아가 나라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서울대는 인성교육 강화를 대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인문학 과목 몇 개를 개설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제라도 서울대는 시험부정을 교육의 위기로 보고 학생의 정신건강 문제를 깊이 고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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