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신중산층의 기준’을 조사해보니(5월 13일자 1·4·5면) 사회구성원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변하고 있었다. 그동안 ‘30평 아파트와 자가용’으로 대표됐듯 경제적 가치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이젠 봉사와 가족, 자기계발, 기부 같은 패러다임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중산층의 기준으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각자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정부 정책이 국민의 이런 가치관 변화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만 봐도 그렇다. 이 추계치는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를 바탕으로 하는데 2013년 1.23명, 2020년 1.35명, 2030년은 1.41명, 그 이후는 1.42명으로 점점 출산율(연금을 지탱할 수 있는 미래세대)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삶의 질이 떨어질까봐 결혼은 해도 아이를 갖지 않거나, 꼭 낳아야 한다면 1명에서 끝내겠다는 30대가 얼마나 많은지 정책입안자들은 모르는 것 같다.
30, 40대 초반 남자들 중에서도 ‘일보다 가정이 우선’이라는 비율이 높았다. 아예 정부가 사고를 확 바꿔서 스웨덴이 하고 있는 것처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중 일부 기간은 반드시 아버지가 해야 한다’고 법을 바꾸는 건 어떨까. “법 때문에 석 달 애 좀 키우고 오겠다”고 남자도 회사에 당당하게 말하고, (육아문제 부담이 큰)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에도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론 육아를 전담하기 위해 자신의 직장경력을 희생하겠다고 생각한 남성이 많지만 정작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면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걸 정부가 알아야 한다.
“전세만 돼도 중산층”이라고 답한 20대 응답자가 4명 중 1명이었다. 정부가 젊은이들의 체념을 잘 알아챈다면 대출전환이나 주택정책을 세울 때 청년층에겐 전세 물량 확보에 초점을 맞추는 식의 세심함도 필요하다. 선진국형 중산층 전성시대를 이루려면 이 시대 중산층을 꿈꾸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좀 더 섬세한 정부의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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