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화산 일부 자율 휴식년제
훼손 심해지자 지킴이 모임 꾸려… 현장실태 조사 뒤 5년간 관리나서
서울 중랑구 봉화산은 조선시대의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북쪽 국경에서 출발한 봉화가 최종 목적지인 남산(목멱산)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던 봉수대가 이곳에 있었다. 높이는 해발 160.1m로 낮지만 긴 세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던 탓에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 등 다양한 나무 군락이 발달했다. 또 도심에선 드물게 박새 직박구리 뻐꾸기 소쩍새 등 야생 조류도 쉽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약 20∼30년 전 근처 신내동 묵동 중화동 상봉동 등지에서 택지개발이 이뤄지면서 봉화산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당장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의 발길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매일같이 새로운 샛길이 생겨났다. 사람들의 발에 짓밟힌 풀과 나무가 말라죽기 시작했다. 산 곳곳에서 토사가 유실되고 새하얀 바윗돌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산사태 위험마저 높아졌다.
17일 오전 봉화산 둘레길에서 만난 구자형 ‘봉화산 지킴이’ 회장(60)은 “이대로 놔두면 우리 동네의 소중한 산이 완전히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고 털어놨다. 20년 동안 신내동에 거주한 구 회장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주민 13명과 함께 올해 1월 말 ‘봉화산 지킴이’ 모임을 꾸렸다. 지킴이들의 1차 목표는 일정 기간 사람의 출입을 막는 ‘자연휴식년제’를 봉화산에 도입하는 것.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2월부터 총 4회에 걸쳐 현장 실태조사와 휴식년제 도입 대상지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마침내 이달 10일부터 중화동 산 1번지 일대(약 5ha)에서 자연휴식년제가 시작됐다. 기간은 5년. 이곳은 산 중심부를 관통하는 작은 계곡이 흐르는 지역으로 샛길로 인한 토질 훼손이 매우 심각했다. 구 회장은 “워낙 완만하게 능선이 전개되는 탓에 평소 등산객들의 출입이 꽤 많은 곳”이라며 “더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입산금지 지주목과 로프를 지킴이들이 구역 전체에 설치했다”고 말했다.
자연휴식년제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자치구 제외)가 실태조사 등 관련 절차를 거쳐 지정할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연을 즐길 권리나 주변 상권 발전을 침해한다며 일종의 규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민들이 지정한 봉화산 자연휴식년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하지만 주민들이 스스로 ‘자율 규제’에 나섰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중랑구 관계자는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휴식년제를 도입하면 ‘반대’ 목소리가 큰 경우가 다반사”라면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휴식년제를 실시한 건 환경 보전과 개선을 위한 의식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봉화산 지킴이들은 앞으로도 정기적인 순찰 활동과 휴식년제 시행 구역의 출입통제, 샛길 폐쇄, 청소 및 수목 가꾸기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이 구역에서 휴식년제를 시범 실시한 결과를 바탕으로 다른 훼손 구간에 대해서도 추가 실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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