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운전의 종착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졸음운전 목숨을 건 도박입니다.” “졸음운전! 자살이자 살인!” 경인고속도로를 통해 매일 출퇴근하는 박상용 씨(43)는 하루에도 수차례 이러한 직설적인 문구가 적힌 졸음운전 캠페인 현수막을 보고 있다. 4월 초만 해도 어디서나 보이는 경고 문구로 인해 졸음이 달아나는 효과도 있었지만 매일 접하는 현수막에 어느새 무감각해졌다. 박 씨는 “처음 몇 번 현수막을 봤을 때는 섬뜩한 기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매일 보니 무뎌지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가 봄철 졸음운전 예방을 위해 전국 고속도로에 내건 졸음운전 경고 문구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도공은 본격적인 행락철을 맞아 4월부터 한 달 넘게 졸음운전과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운전자들이 보기 쉬운 요금소 입구, 방음벽, 터널입구, 표지판 뒷면 등 전국 고속도로 시설물 1988곳에 현수막을 설치했다. 전국 도로전광판(VMS) 560곳에서 경고 문구를 수시로 보여주고 멀리서도 쉽게 볼 수 있도록 건물 외벽, 광고탑, 애드벌룬 등을 활용한 초대형 현수막도 144곳에 설치했다. 이러한 대대적인 졸음운전 예방 캠페인을 펼치게 된 것은 2010∼2014년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중 약 61%(연평균 180명)가 졸음운전 및 전방주시 태만으로 인한 사고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운전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23년 경력의 화물기사 정인성 씨(59)는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졸음이 느껴지곤 하는데 ‘졸면 죽는다’는 문구가 눈에 띄면서 잠이 달아났다”며 “자극적인 내용이 많긴 하지만 졸음운전을 쫓는 데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졸음운전 예방효과는 미비하고 불쾌감만 준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운전자 최모 씨(49)는 “지난 주말에 고속도로를 지나는데 비슷한 말이 너무 많이 붙어있어서 ‘언어 공해’로 느껴졌다”며 “이런 과격한 방식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졸음운전 예방을 위한 캠페인의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하면서도 도공 측의 이러한 홍보 방식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고, 운전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도 아닌데 (곳곳에 설치하는 것은) 교통안전에 있어 부정적”이라며 “졸고 싶어서 조는 게 아닌데 하지 말라고 한다고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아무리 강한 문구라고 해도 계속 보면 운전자들이 무뎌져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도공 관계자는 “그동안 졸음운전 캠페인을 많이 펼쳐왔는데 효과가 미비했고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많이 나왔다”며 “다소 과격한 방식이지만 운전자들이 이만큼 졸음운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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