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기업이 가치-공간-인재 공유하는 ‘산학융합 3.0’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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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탐방]한국산업기술대학교 취임 2년차 이재훈 총장

오랜 공직 경험을 통해 산업계 전반에 통찰력을 갖고 있는 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은 ‘기업을 품는 대학, 가치를 공유하는 대학’을 추구하고 있다. 이 총장은 “우리나라도 강소기업을 키워서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한국산업기술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산업계의 수요와 국제적인 흐름을 반영해 최고의 대학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국산업기술대 제공
오랜 공직 경험을 통해 산업계 전반에 통찰력을 갖고 있는 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은 ‘기업을 품는 대학, 가치를 공유하는 대학’을 추구하고 있다. 이 총장은 “우리나라도 강소기업을 키워서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한국산업기술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산업계의 수요와 국제적인 흐름을 반영해 최고의 대학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국산업기술대 제공
《 한국산업기술대는 국내 최대 산업단지인 경기 시흥·안산 스마트허브(시화반월공단)에 터를 잡고 있다. 2007년 국내 최초의 산학 협력 복합 시설로 준공한 기술혁신파크(TIP) 건물 회의실에 들어서면 광활한 공단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창한 날씨 덕에 멀리 인천 송도국제도시까지 선명하게 보이던 지난달 28일. 유리창 너머에 펼쳐진 공단 건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은 “우리 경제가 언제까지 대기업만 바라보고 살 수 있느냐”며 “20∼30년 후를 보고 독일이나 일본처럼 강소기업을 키워야 하며, 여기 있는 기업들을 그렇게 키우는 것이 우리 대학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산기대 6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 총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차관,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차관을 지낸 산업 분야의 전문가답게 대학의 역할을 큰 틀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기업을 품는 산학 융합 선도 대학, 산학 융합 3.0’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산기대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는 이 총장에게서 우리 대학과 산업계가 나아갈 길을 들어 봤다. 》
○ ‘산학 융합 3.0’ 추진

취임 2년 차에 들어선 이 총장은 오랜 공직 생활을 거쳐 대학에 왔을 때 문화 차이를 많이 느꼈다고 했다. 조직의 위계질서가 강하고 상명하복에 따라 일이 처리되는 공무원 조직과 달리 대학은 구성원들의 합의를 구하고 협력하는 과정이 아무래도 좀 더뎠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이 총장은 산기대에 많은 변화를 추진했다. 도서관과 휴식 공간을 늘리는 등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교직원 인사제도도 성과급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그는 “우리 대학은 개교 17년밖에 안 됐지만 늘 최고의 취업률을 자랑하고, 산학 협력에서도 독보적으로 앞서 가고 있다”며 “다만 약간 정체 상태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고 이에 대해 구성원들이 공감해 주고 있어서 우리의 경쟁력이 더 커지고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이 총장은 “산기대 구성원들은 산업체 수요에 맞춰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적극적으로 내보내는 데 있어서 교직원과 학생 모두가 국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서 “이제는 좀 더 큰 시각에서 산학 협력을 하자는 취지로 산학 융합 3.0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장이 구상하는 산학 융합 3.0이란 대학과 기업이 가치, 공간, 인적자원이라는 3가지 요소를 공유하는 것이다.

“일회성, 일방적 산학협력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대학이 가진 최대의 장점인 연구개발 능력과 인적자원을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에 맞춰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학과 기업이 서로를 살려야 존재 가치가 있다’는 가치를 공유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이 가진 연구 공간을 아예 기업과 공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대학이 선두에 서서 강소기업이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산학 융합 3.0의 취지입니다.”

이런 취지에 따라 산기대는 다방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먼저 올해부터 재직자 교육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기업인재대학을 설립했다. 학사, 석사, 박사 등 다양한 과정이 편성돼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최신 기술과 동향을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산업자원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제조기술혁신연구원도 만들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시화반월공단 최고경영자(CEO)들의 수요를 파악해 기계, 전자 등 5개 분야별로 연구 트레이닝 과정을 마련한 것이다. 이 총장은 “학교 인근 기업체의 엔지니어들이 4∼6개월 동안 제조기술혁신연구원에 등록해서 대기업에서 은퇴한 고위급 인력이나 외국 기술자들과 함께 기술 개발을 하게 된다”면서 “CEO와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최신 기술을 익힐 수 있고, 이를 지도하는 이들은 고급 노하우를 사회에 환원하며 윈윈할 수 있어서 새로운 산학 협력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산기대는 기업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데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 총장은 “인근에 1만7000개의 기업이 있는데 자체 연구소를 가진 곳은 8%도 안 된다. 나머지 기업들은 과거 관행대로 일을 하다 보니 점점 기술력이 뒤처지고 공단이 노후화되는 문제가 있다”면서 “산학융합관과 공용장비센터를 비롯한 학교 시설을 인근 기업들에 개방해서 중소기업이 확보하기 어려운 고가 장비 등을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교육과 국제화도 새로운 접근법으로

이 총장은 산자부 재직 시절인 2006년 교육부와 함께 공학 교육 혁신 대책을 만든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우리 공학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라고 진단했다. 산업계의 수요를 반영한 교육과정을 만들자는 것이 그 당시의 과제였다”면서 “이제 대학 현장에 와 보니 많은 대학이 산업계의 수요를 감안하고 있고 산학 협력에도 좀 더 적극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장은 모든 대학이 산학 협력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밝혔다. 그는 “예전에는 산업계의 수요를 맞추지 못하는 대학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1년 넘게 일해 보니 대학은 기본적으로 상아탑과 같은 측면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면서 “연구 중심을 통해 학문 발전에 기여하는 대학과 산학 협력을 통해 현장 발전에 기여하는 대학이 투트랙을 이루도록 균형 있게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대학이 처한 여건과 환경을 감안해서 대학이 차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는 고등인력 교육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총장은 산기대의 경우 산학협력을 통해 국가의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후자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교육과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기대의 교육을 과제 중심으로 바꾸고, 독일 같은 도제식 교육으로 강화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었다. 그는 “교육이 정형화되지 않고 학생들에게 문제 해결 능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13개 공학계열 학과에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트리즈 교육법을 모두 보급했다”고 밝혔다. 이 총장은 “독일의 탄탄한 제조업을 떠받치는 것은 대학에서 소수의 학생에게 많은 교수진이 멘토로 따라 붙어 과제 중심의 교육을 실시하는 역량 덕분”이라며 “국내 대학 교육 여건상 쉽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대학도 입학하면 곧바로 멘토가 따라 붙어서 4년 동안 맞춤형 교육을 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총장은 공직 경륜을 바탕으로 창업 지원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쳐서 취직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업을 하도록 지도하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도 점점 실패가 용인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는 만큼 학생들이 참신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활용해 과감하게 창업에 도전하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공대가 산학 협력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 대학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창업을 통해 산학 협력의 블루오션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산기대는 창업과 관련된 스타트업이나 인큐베이팅 등의 과정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지주회사 지원 시스템, 실제 투자가 이뤄지도록 알선하는 시스템 등을 종합적으로 도입했다. 학생들이 낸 창업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건당 70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이 총장은 대학의 국제화 방향도 산학 융합의 관점에서 새롭게 제시했다. “대학이 혼자만 국제화를 부르짖는 것은 이제 효과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의 유수 기업들은 글로벌 수급 시스템을 갖추고 세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대학이 여기에 둔감한 상태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연구개발을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산업계의 국제화 흐름에 맞는 대학 교육과 산학 협력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총장은 “산기대야말로 시화반월공단의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리더가 될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혁신적인 교육을 하고, 인근 산업체에는 대학의 역량을 나눠 줌으로써 노후화된 산단을 살리고 국가 산업 구조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시흥=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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