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자신의 부적절한 처신을 털어놓을 때 보인 일말의 양심을 기초로 성실하고 정직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장기간의 실형에 처한다.”
2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25호 법정. 재판장의 선고가 떨어지자 하늘색 수의를 입은 최민호 전 판사(43·사법연수원 31기)는 고개를 떨궜다. 불과 넉 달 전만 해도 법대에 앉아 사건 당사자를 내려다보던 최 전 판사는 피고인석에 앉아 판사의 선고를 기다리는 처지가 돼 있었다. 현직 판사로서는 처음으로 긴급체포돼 구속 수감된 그는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재판부와 검사석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담담하게 법정을 나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현용선)는 ‘명동 사채왕’ 최모 씨(61·수감 중)에게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형사사건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2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 전 판사에게 검찰 구형량과 같은 징역 4년에 추징금 2억6864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금품 수수 사실은 물론이고 사건 청탁이나 알선 의도 등 대가성이 있었다는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최 씨가 형사사건에 관해 도움을 받기 위한 의도를 갖고 접근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며 “이에 부응해 마약사건 담당 검사에게 전화하거나 사건기록 사본을 받아 검토하는 등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또 “최 씨로부터 받은 액수가 상당히 크고, 순수한 돈거래가 있을 만큼 친분이 두텁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선고 도중 최 전 판사는 고개를 돌려 한숨을 크게 내쉬고, 이따금씩 감정을 추스르는 듯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사와 검사의 독립성, 공정성, 청렴성이 갖는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피고인의 변명에 급급한 모습으로 인해 사법권과 민주적 기본질서, 법치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피고인의 그릇된 욕심과 행동들로 무너져버린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엄히 벌한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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