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살고싶어”… 움직이는 고철서 고뇌하는 인간형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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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로봇 기술전쟁 - 영화속 진화

“두려워. 난 살고 싶어.”

올 3월 개봉한 영화 ‘채피’에는 지능을 갖게 된 로봇 채피가 낯선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으면서 두려운 감정과 삶에 대한 의지를 토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가 개봉되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감정을 가진 로봇은 인격체인가, 아닌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화는 사람들의 기대수준을 표현한다. 사람 대신 일하는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에서 시작된 영화 속 로봇은 최근에는 인간의 친구이거나 인간을 위협하는 새로운 종(種)으로 묘사되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김문상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로봇미디어연구소장실 책임연구원은 “최근 로봇 영화는 감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면서 “사람이 인형에 이름을 붙이고 인격체처럼 대하는 것과 유사한 행동을 로봇에게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2% 부족한 1990년대 이전 로봇

인간을 닮은 로봇이 처음 등장한 영화는 1921년 이탈리아 영화 ‘머캐니컬 맨(Mechanical Man)’이다. 영화 속 로봇은 흡사 길거리 가로등처럼 생겼다. 걷는 속도는 사람보다 느리다. 주먹을 한 번 뻗는 데도 ‘삐거덕’ 하는 소리가 날 만큼 고철 덩어리에 가깝다.

그나마 봐줄 만한 로봇이 등장한 건 1977년 개봉한 영화 ‘스타워즈’다. 스타워즈에는 인간형 로봇 ‘C3PO’와 컴퓨터형 로봇 ‘R2D2’가 등장한다. 서로 사람처럼 대화하며 사건을 해결한다. 인간에 필적할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지만 인간에게 복종하는 존재다. 특히 C3PO는 두 발로 움직이지만 뒤뚱뒤뚱 걷는 ‘불완전한’ 인간형 로봇으로 그려진다. 전투를 벌이기보다는 인간 옆에서 통역이나 정보 전달 등 보조 역할을 수행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로봇은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이지만 감정이 부족하고 어딘가 허점을 갖고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1984년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킬러 로봇 ‘T800’은 로봇 뼈대에 인간의 피부를 이식한 것으로 나온다. 대사 없이 제거할 대상을 찾아 움직인다. 막강한 실력을 갖췄지만 감성이나 윤리적 판단력은 거의 없는 존재다.

1987년 영화 ‘로보캅’도 비슷하다. 죽음을 앞둔 경찰관의 신경계를 빌려 썼다는 점에서 인간과의 연결고리가 있을 뿐 사실상 하드웨어만 갖춘 로봇이다. 로보캅은 서 있는 자세나 관절의 움직임도 어색하다. 힙합 동작처럼 뚝뚝 끊어서 움직이며 기계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1999년 개봉한 ‘바이센테니얼 맨’은 기존 영화와 달리 로봇의 진화를 처음으로 담고 있어 주목 받았다. 주인공인 로봇 ‘앤드루(NDR-114)’는 뒤뚱뒤뚱 걷고 창밖으로 뛰어내리라는 핀잔을 듣자 실제로 뛰어내려 크게 고장 나는 등 불완전한 존재로 나온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지능과 감정을 얻고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인간의 지위를 얻는다.

똑똑하고 강하지만 비인간적인 2000년대 로봇

21세기 로봇은 이전과 비교해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인다. 2001년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에서 로봇 ‘데이비드’는 식물인간이 된 친아들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제작됐다. 데이비드는 다시 살아난 친아들에게 질투를 느끼는 등 진정한 인간이 되기를 열망한다.

이 시기 로봇은 사람보다 뛰어난 운동 능력을 지닌 존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2004년 ‘아이, 로봇’에 등장하는 로봇은 중국 무협영화에나 나올 법한 고수에 필적할 운동 능력을 자랑한다.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도 마찬가지다. 아이언맨은 소형 원자로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빠르게 날아다닌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언젠가는 인간 이상으로 뛰어난 성능을 지닌 로봇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영화 속에 표출된 셈이다.

최근 로봇은 인간과 갈등 일으키는 존재

2011년 ‘리얼 스틸’에 등장하는 복싱 로봇은 로봇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전 영화들처럼 비현실적인 운동신경을 묘사하는 데 주력하는 대신 현실 감각을 찾았다. 주인공인 인간이 컨트롤러를 들고 로봇의 움직임을 조종하면 이에 따라 움직이거나 인간의 행동을 모방한다.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기계임을 드러내지만 현재 기술로 구현이 가능할 것처럼 느껴지는 동작을 선보인다.

최근에는 감성을 갖춘 로봇이 인간과 갈등을 겪는다는 설정도 자주 등장한다. 로봇이 지능은 물론이고 감성까지 얻는다면 어떻게 될지 영화적인 상상력을 펼친다. 2014년 리메이크 된 ‘로보캅’은 27년 전에 입었던 금속 갑옷을 벗고 그래핀 소재의 최첨단 방탄복을 착용했다. 마치 인간 특수요원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을 선보인다. 원작에서는 로보캅의 액션이 볼거리였다면 2014년판에서는 주인공과 로봇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 부각된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로봇의 지능에만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빅데이터가 발달하며 사회성 등 감성을 가진 로봇을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면서 “로봇과 인간의 갈등은 발전하는 로봇 기술에 대한 인간의 기대감과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승민 enhanced@donga.com·최영준·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로봇#기술전쟁#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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