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본 적이 있다. 청년은 대학등록금을 버느라 편의점에서 밤샘 알바를 하고 있었다. 새벽녘에 귀가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잠이 들었단다. 누군가가 다리를 툭툭 치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등산복을 입은 어르신 한 분이 경로석에서 비키라며 등산용 스틱으로 다리를 치고 있었다. 경로석에 앉은 잘못이 있긴 하지만 그 노인이 밤샘 알바로 지친 자신보다 더 건강해 보이더라는 내용이었다. 어째서 자기 같은 청년층이 건강한 노인의 지하철 티켓 값까지 내야 하느냐는 물음으로 글은 끝나고 있었다.
청년의 고단한 일상이 비싼 등록금, 청년실업, 공짜 복지, 세대 갈등 등 온갖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어 한동안 뇌리에 남았다. 그러면서 요사이 노인이 아무리 봐도 노인 같지 않다는 점도 청년들이 노인 복지에 반감을 갖는 이유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100세 시대에 65세가 노인?
얼마 전 동네 사우나에서 한 어르신이 토끼띠라고 소개하길래 “나도 토끼띠”라고 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몸매를 보고 12세 연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24세 위라 깜짝 놀랐다. 60, 70대라 하더라도 건강, 경제력, 사회적 활동 범위에서 젊은층 못지않은 활력을 가진 분이 많다. 그분들도 주변에서 자신을 노인이라고 지칭하면 싫어하는 기색이다.
사견이지만 나이가 많아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열린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면 젊은이고 나이가 적어도 아집이 세고 뭐든 훈수를 하려고 하면 늙은이다. 다만 정부가 정한 노인 기준은 따로 있다. 만 65세는 만국 공통의 노인 연령이다. 국민연금, 지하철 공짜 티켓, 홀몸노인 지원 등 노인에게 제공되는 모든 복지의 지급 개시 연령이 65세다.
65세를 노인으로 정한 사람은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였다. 그는 세계 최초로 사회보험을 도입하며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65세로 정했다. 1910년대 독일 남성의 기대수명이 47세였다고 하니 제도는 도입하되 사실상 연금을 주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던 셈이다. 이 기준을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유엔이 받아들이며 세계가 그대로 쓰게 된 것이다. 기대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비스마르크 시대의 기준이 통용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조선시대 국왕 27명의 평균수명이 46.1세인 것을 보면 영양과 위생상태가 나쁘고 고된 노동을 했던 평민의 수명은 훨씬 낮았을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현 시대에는 자신의 나이에다 0.7을 곱한 것이 사회적 나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65세에 0.7을 곱하면 45.5세이니 한창 일할 때이다. 25세에다 0.7을 곱하면 17.5세다. 17세면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연령이니 청년백수로 부모 도움을 받아 지내는 요즘 젊은이들의 처지에 들어맞는다. 노인 기준연령 높여야 한다
그동안 65세 기준을 건드리기 어려웠던 이유는 노인복지의 출발점을 늦추면 노인층의 저항을 부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한노인회가 지난달 노인연령을 상향 조정하는 공론화 안건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나라 재정을 생각하면 수급연령을 늦추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모두가 공짜만 바라는 시대에 복지 혜택 축소 논의를 터준 대한노인회를 보며 ‘역시 어른은 어른’이란 생각이 든다. 어르신들의 노인 연령 공론화 제의를 우리 사회가 복지조정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차제에 부정적 어감의 ‘노인’이란 용어도 미국의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 같은 멋진 말로 바꾸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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