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톡톡]“허리, 가슴까지 특정 수치 요구… 통통하면 취업도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9일 03시 00분


“놀이공원서 뚱뚱하다고 공개망신, 그날이후 살빼기 전쟁”

《 ‘노출의 계절’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숨겨진 뱃살, 통통한 팔다리.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죠. 마른 사람들마저 날씬함을 유지하기 위해 몸매 관리에 부쩍 신경을 쓰게 됩니다. 간헐적 단식부터 원 푸드 다이어트, 디톡스 등 다이어트는 그 방법도 참 가지가지입니다. 하지만 무리한 다이어트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줄 뿐 아니라 건강을 심하게 해칠 수도 있지요. 다이어트 때문에 울고 웃었던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인격 모독 당하지 않으려 살 뺀다”

―패션업에 종사하다 보니 유행에 굉장히 민감해요. 요즘 사이즈가 작게 나오는 옷들이 많아요. 백화점 여성 기성복도 77 사이즈 이상으로는 잘 안 나와요. 멋지게 옷을 소화하려면 다이어트를 할 수밖에 없죠. 여름에는 ‘하의실종’ 패션이 인기잖아요.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짧은 하의를 예쁘게 입으려면 날씬해야죠. 사실 겨울에도 두꺼운 외투나 옷을 껴입을 때 덩치가 크면 ‘옷발’이 안 살아요. 저에게 다이어트는 일상이랍니다.(소정현·32·여·패션MD)

―대학교 신입생 때 매일 놀고먹다가 120kg까지 쪘어요.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어 살 뺄 생각은 안 했죠. 그러다가 서울대공원 코끼리열차를 탔을 때 굴욕적인 일을 겪었어요. 맨 뒷좌석 좁은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데, 기사님이 “뒤쪽 무게가 너무 무거우니 자리를 옮겨 달라”고 방송하는 거예요.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었죠. 결국 중간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죠. 킥킥대던 사람들 모습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발걸음이 저절로 헬스장으로 향해져요.(장원준·31·회사원)

―늦은 나이 군 입대를 앞두고 있어요. 저는 180cm에 97kg으로 우람한 편인데, 뚱뚱한 친구들은 군대에 가면 체력도 달리고 살쪘다는 이유로 선임들에게 인격 모독적인 말도 듣는다고 하네요. ‘진짜 사나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샘 해밍턴 보셨죠? 그 사람 엄청 뚱뚱하잖아요. 뛰지도 못하고 조교가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4, 5세 어린 친구들이랑 부딪칠 거 생각하면 스트레스예요. 비만 군인들을 모아서 다이어트 시키는 ‘건강소대’라는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 들어가고 싶진 않아요. 20kg 정도는 입대 전에 빼고 싶어요.(서준원·28·휴학생)

날씬한 몸매가 취업 스펙?

―직장에서 능력을 외모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실적이 좋지 않으면 “몸무게가 줄수록 실적이 올라갈 거다”라고 말해요. 우스갯소리인 건 알지만 솔직히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상처받아요. 팀장님은 날씬한 후배만 봤다 하면 “일도 잘하는데 몸매 관리까지 잘한다”고 칭찬하시고…. 이러다가 체형 때문에 후배한테 밀리게 생겼어요. 물론 실적으로 평가받지만 팀장의 주관이 인사고과에 반영돼요. 한마디 한마디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죠. 특히 요즘은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몸매가 좋다고 생각하잖아요. 지방흡입 수술을 할까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예요.(이윤지·30·여·보험 영업직)

―최근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카카오톡 다이어트 모임’이 인기예요. 저도 4학년 때 인터넷 카페에서 ‘취업 다이어트’라는 글을 보고 가입해 활동했어요. 이곳에서 지역별로 4∼7명씩 모여 단체 카톡방을 만들었죠. 대화방에서는 다이어트 식단이나 운동방법, 면접 후기나 전형 일정 같은 정보들을 공유해요. 매일 식단이랑 운동량, 몸무게 변화도 보고하고요. 그렇게 해서 저는 두 달 만에 9kg 빼고 취업에 성공했어요. 물론 외모 때문에 합격한 건 아니겠지만, 덩친 큰 후배들에겐 저는 체중 감량부터 하라고 조언해요. 면접관들도 결국엔 사람이잖아요. 그들에게 호감 줄 수 있는 외모일수록 좋죠.(임은아·26·여·은행원)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다이어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예요. 디자인실에서는 보통 막내 디자이너나 인턴들이 반강제적으로 피팅 모델을 하거든요. 허리 사이즈가 26, 27 정도는 돼야 뽑힐 수 있어요. 어떤 패션업체에서는 키는 165cm 정도, 그리고 가슴, 엉덩이 둘레도 특정 수치를 요구해요. 한마디로 ‘뚱뚱하면 뽑지 않겠다’는 거죠. 디자인 역량이 아닌 몸매로 평가당하는 게 억울하고 기분 나쁘지만 어쩌겠어요. ‘을’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살 빼는 방법밖에 없죠. 모델을 겸할 수 있는 신체조건을 가진 친구들이 마냥 부러울 뿐입니다.(김혜지·24·여·대학졸업생)

무리한 다이어트 꼭 탈 나

―키가 170cm인데 스무 살 때 100kg까지 쪘어요. 거울을 볼 때마다 점점 사라져 가는 얼굴 선을 보곤 안타까워했죠. 여자 옷 사이즈 88도 작아서 남성용 티셔츠를 사기도 했어요. 그래서 독하게 다이어트하기로 마음먹었죠. 자취방 벽에 공효진처럼 날씬한 연예인 사진을 덕지덕지 붙여놨어요. 자극받으려고요. 제 허리 사이즈보다 10인치 작은 30인치 바지를 사놓기도 했어요. 힘들 때마다 ‘저 바지를 입고야 말겠다’는 오기로 버텼답니다. 살쪘을 때로 돌아가는 악몽을 가끔 꾸기도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27인치 바지를 사 입을 수 있는 몸매가 됐답니다.(홍세영·32·여·대학원생)

―40대 중반에 15kg을 감량할 때였습니다. 날씬한 체형을 유지해야 된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운동을 했더니 어깨 통증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헬스장을 다니던 분 말에 혹해 벌침을 맞았습니다. 벌침이 관절 통증에 좋고 체지방이 쌓이는 걸 막아줘 다이어트에 도움 된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결과가 아주 안 좋았습니다. 얼굴이 퉁퉁 붓고 구역질이 나고…. 헬스장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구급대원이 달려와 시커먼 봉투로 입을 막으며 천천히 숨 쉬도록 유도하고 아주 난리가 났었죠. 역시 뭐든 욕심내면 안 됩니다. 적당한 운동이 최고의 다이어트 비결인 것 같습니다.(박병건·49·사업가)

―다이어트 약을 반년 정도 복용했어요. 약 성분이 독해 원래는 하루 2회만 먹어야 하는데 빨리 빼고 싶은 마음에 하루 3회씩 먹었죠. 먹는 것도 800Cal 이상은 절대 섭취하지 않았어요. 아침에 두유 한 팩, 점심에는 김밥 한 줄, 저녁은 아몬드 여덟 알 정도만 먹었죠. 결국 영양 불균형이 심해지더군요. 석 달쯤 지나니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어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나중엔 원형 탈모가 왔어요. 관리를 받아 전보다는 좋아진 편이지만 아직까지 가발을 쓸 정도로 보기 흉해요.(정은화·38·여·주부)

“안 빼도 그만, 이대로도 좋아요”

―뚱뚱함도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회사에서 행사가 있으면 사회를 도맡아요. 작은 키에 똥똥한 제 모습이 친근감을 불러온대요. 제 입담도 더 돋보이게 해주고요. 덕분에 사장님이 저를 가만 놔두질 않지만 행복하답니다. 물론 잘생겼는데 입담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재밌게 생긴 사람이 재밌는 얘기 해주는 것도 좋지 않나요? 솔직히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을 겪지 않고 있어서 굳이 살 뺄 생각은 안 해요. 외모에 연연하는 것보다는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당당히 어필하는 게 중요하죠. 세상은 자기 잘난 멋으로 사는 거죠 뭐.(유재현·38·회사원)

―예뻐지고 싶어 몸을 가꾸는 건 좋지만, 너무 지나치면 보기 안 좋아요. 주위에 여자친구들을 보면 키가 크든 작든 원하는 몸무게가 48kg으로 다들 똑같아요. 저는 너무 마른 분들을 보면 사람같이 안 보여 싫던데…. 체중이 너무 적게 나가면 볼륨감도 없고요. 남자들 중 상당수가 비쩍 마른 여자는 싫어해요. 근육과 지방이 적당히 균형을 갖춰야 섹시해 보이고 예쁘죠. 내 여자친구라면 55∼60kg 정도가 좋겠어요.(서형준·20·대학생)

오피니언팀 종합·김정은 인턴기자 성신여대 심리학과 졸업
#살#허리#가슴#수치#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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