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도 요구도 말라 내 행복만 생각하라”

  • 동아닷컴
  • 입력 2015년 5월 31일 17시 04분


아침밥 집착男 vs 양말 집착女
[정신과전문의 최명기의 남녀본색]


사소한 싸움이 누적돼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결혼생활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물이 새는 낡은 건물과 같다. 건물도 관리하고 수선해야 수명이 오래가듯, 살다보면 생겨나는 사소한 갈등을 그때그때 해결해야 결혼생활도 오래간다.
위기에 처한 부부들이 반복하는 말이 있다. 남자들은 예외 없이 아내가 아침밥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투정한다. 여자들은 남편이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놓는다면서 불만을 터뜨린다. 그뿐 아니다. 헤어스타일, 시간 지키기, 술버릇, 잠꼬대, 코골기, 담배, 샤워, 목욕, 스킨 냄새, 애완동물과 관련된 습관을 놓고 사는 내내 다투는 커플이 의외로 많다. 이혼 위기 앞에서도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이 아내가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는 데 대해, 아내가 남편이 아무 데나 양말을 집어던지는 데 대해 따지는 데는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성격보다 성품이 문제

사람들은 죽고 살 정도의 큰일이 아니면 대개 작은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일로 다투고 나면 ‘별거 아니었는데 싸웠다’는 생각에 창피하다. 하지만 남이 보기에는 작은 일도 그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싸우게 되면 나에게는 큰일이다. 반대로 남 보기에는 큰일이더라도 내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작은 일이다.

마음의 상처는 크고 작음을 비교할 수 없다. 반복되는 상처는 환부를 덧나게 한다. 상처가 생겼을 때 저절로 아무는 것은 면역력 때문이다. 그런데 육체에 면역력이 있듯 마음에는 ‘회복탄력성’이 있다. 회복탄력성이 온전하면 아무리 큰 상처라도 시간이 흐르면 회복된다. 하지만 채 낫기도 전에 반복적으로 상처를 입다보면 덧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작은 갈등이 작은 싸움을 일으키고, 작은 싸움이 작은 상처를 만들고, 작은 상처가 누적되면서 결혼생활이 허물어진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4년 사법연감의 이혼소송 통계에 따르면 이혼의 주된 사유는 ‘성격 차이’(47.2%)가 압도적이다. 이어 ‘경제 문제’(12.7%) ‘가족 간 불화’(7.0%) ‘정신적·육체적 학대’(4.2%) 등이 뒤를 따랐다. 사소한 일로 다투다 이혼하면, 경제적 곤란이나 가정폭력 같은 큰 문제를 찾을 수 없기에 ‘성격 차이’에 체크를 한다. 사실 성격 차이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부부관계에 대해서 강연하러 가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성격이 비슷한 부부와 다른 부부 중 누가 더 잘 사느냐’다. 성격이 비슷한 부부가 더 잘 살 것 같겠지만 꼭 그렇진 않다. 남자도 꼼꼼하고 여자도 꼼꼼한 커플은, 자신이 꼼꼼한 것은 당연하게 여기는 반면 상대방이 꼼꼼한 것은 ‘답답하다’면서 싸운다. 남자도 덜렁거리고 여자도 덜렁거리는 커플은, 자신이 덜렁거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대방의 덜렁거림에 대해서는 무책임하다고 비난한다.

성격은 다른데 잘 사는 커플도 많다. 남편은 소심하고 아내는 외향적인 커플의 경우 남편은 아내가 사근사근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을 높이 쳐준다. 아내는 침착하고 진중한 남편의 태도를 높이 산다. 성격이 다르기에 서로 보완하면서 잘 지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 나쁜 부부의 경우 아내는 소심한 남편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남편은 외향적인 아내가 여성답지 못하다고 비난한다.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 성품이 문제다. 성품이 좋은 이들이 만나면 성격이 비슷하건 다르건 잘 산다. 성품이 나쁜 이들이 만나면 성격이 비슷하건 다르건 잘 못산다. 따라서 성격 차이로 이혼한다는 것은 사소한 갈등, 다툼, 상처가 누적돼 이혼한다는 의미다.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나는 이런 표면적 갈등 밑에는 커다란 무의식적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남편들이 아침밥에 집착하는 무의식을 살펴보자. ‘모성 추구’ 때문에 아내의 아침밥 차리기에 집착하는 유형의 남편이 있다. 어머니가 자신을 돌봐줬듯, 아내가 자신을 돌봐줘야 한다는 잠재의식을 가진 남편은 아침밥 차리기가 아내의 모성 상징 중 하나가 된다. 아내가 차린 아침밥을 먹어야 모성에 대한 갈구가 충족된다. 엄마는 엄마고 아내는 아내다. 엄마로부터 받지 못한 완벽한 모성을 아내에게서 받고자 하면 갈등의 싹이 된다.

아침을 먹어야 하는 이유

이런 경우 부부생활의 다른 측면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일어난다. 아내의 애정을 놓고 자녀와 경쟁하는 남자도 있다. 자녀에게만 신경 쓰고 자기에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사소한 일로 트집 잡고 징징대면서 아내가 엄마처럼 그런 투정을 다 받아주길 바란다.

가장의 지위를 아내의 아침밥 차리기로 확인하려는 남편도 있다. 어릴때 어머니 위에 군림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라면 의식 차원에선 아버지에 대해 반감이 있다. 아버지에게 당하는 어머니가 불쌍하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간다. 어느새 자신도 아내의 아침밥 차리기를 통해 권위를 확인하려 한다. 이런 남자는 부부생활의 다른 측면에서도 아내를 통제하려든다. 돈도 남자가 관리하고, 아내가 누구를 만나는지도 알고자 한다. 심지어 아내가 친정 식구를 만나는 것도 막는다. 섹스를 할 때도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하고 아내의 처지는 배려하지 않는다.

남편은 원하지 않는데 아내가 굳이 아침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 아내는 정성스럽게 차린 밥을 남편이 먹고 출근해야 한다는 ‘현모양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남편은 회사에 지각할지 몰라 마음이 급한데, 아내는 마치 자식 다루듯 아침을 챙겨주려 한다. 남편이 아침을 안 먹고 출근하면 서운해한다. 그런데 아침을 거르는 남편 중 상당수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온다. 아내는 화가 난다. 술 먹고 놀고 오느라 자기가 차린 아침밥도 못 먹는 꼴을 보면 짜증이 난다. 그렇게 어떤 부부는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는 것 때문에 다투고, 어떤 부부는 매일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것 때문에 다툰다.
양말을 치워야 하는 이유

아내들이 결혼생활 내내 지긋지긋해 하는, 남편의 ‘양말 내던지기’엔 어떤 속사정이 숨어 있을까. 양말은 세탁기 옆 빨래바구니에 넣으면 되는데 남편은 그러지 않는다. 혹시 빨래바구니를 거실에 두면 그 안에 넣을까 했더니, 이번에는 농구하듯이 양말을 던진다. 슛이 실패해 빨래바구니 옆에 양말이 떨어져도 줍지 않는다. 80세가 넘은 노부부 중에도 양말 던지기로 다투는 사람이 있다. 남편은 매일 양말 잔소리하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사소한 일로 왜 저러나 싶다. 하지만 아내는 그 별거 아닌 일을 하지 않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는다.

평생 듣기 싫은 잔소리를 들으면서 남편들이 습관을 못 바꾸는 이유는 뭘까. 우선 피곤하다. 집에 들어오면 쉬고 싶다. 그런데 아내는 옷 갈아입어라, 세수해라 잔소리를 한다. 그냥 좀 누워서 쉬게 해주면 좋겠는데, 빨래바구니에 양말 넣는 것 같은 사소한 일로 들들 볶으니 싫다. 가만히 놔두면 조금 있다가 갖다놓을 텐데 그걸 못 기다리고 재촉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는 조금 있다 갖다놓는다고 하면서 소파에 누워 TV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는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양말을 지저분하게 여기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아내는 남편의 냄새 나는 양말을 집게로 집기도 한다. 남편 처지에서 보면 그런 아내는 결벽증 환자다. 바닥에 벗어둔 옷과 양말을 아내가 불결하게 여기는 것도 납득이 안 간다.

아내의 생각은 다르다.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하루 종일 쓸고 닦는다. 그런데 남편은 칭찬을 하기는커녕 냄새 나는 양말을 벗어놓는다. 누구는 치우고 누구는 어지르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 양말 정도는 스스로 갖다놓으라고 시켜도 남편은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룬다. 그러다보면 급한 사람이 먼저 움직인다. 세탁기를 돌릴 때까지 남편이 꼼짝도 하지 않으면 아내가 주워서 세탁기에 넣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남자들은 청소와 빨래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 빨래도 돕고 청소도 돕는 남편은 벗은 양말을 빨래바구니에 넣는다. 어차피 자기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하면 될 것을 자기한테 시켜서 귀찮게 한다는 생각이 들면 남편은 더 꿈쩍도 하지 않으려 한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는 그렇게 매일 저녁 양말을 빨래바구니에 넣는 문제로 실랑이를 벌인다.

싸우면서 정들지 않는다

신혼부부 중에는 주도권에 대한 집착 때문에 사소한 일에서 양보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사소한 일을 양보하면 다음엔 큰일도 양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한쪽이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양쪽 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싸움으로 이어진다. 전쟁을 하면 최전선에서부터 방어해야 하듯,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걸고 싸운다.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 한다. 자신이 상대를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계속 부닥치고 싸운다. 이런 식으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이혼에 이르는 신혼 커플, 적지 않다.

사소한 일로 싸우는 부부 중엔 한쪽은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한쪽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시부모가 집에 갑자기 오는 일이 반복되면, 남편에게는 사소한 일이지만 아내에게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아들이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은 남편과 달리 아내에겐 사소한 일이 아니다. 상대에게 중요한 일에 대해 내 처지에서 별것도 아닌 일로 왜 그러냐고 하는 태도 자체가 싸움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평소 감정이 안 좋으면 싸움의 빈도와 정도가 심각해진다. 서로 감정이 좋을 때는 그냥 넘어가던 일도 감정이 안 좋을 때는 심하게 다툰다. 남편이 주식 투자로 돈을 날리거나 아내 몰래 형제나 친구에게 보증을 섰다가 문제가 되면 아내의 감정이 좋을 리 없다. 아내가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곗돈을 부었다가 날리게 되면 남편은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별일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감정이 상한다.

싸우면서 정든다고 하지만 실제론 싸우면 싸울수록 관계는 더 나빠진다. 싸움은 어떻게든 피하고 봐야 한다. 싸움을 거는 쪽에서는 별것 아닌 걸로 싸운다고 여기지만, 싸움에 말려드는 쪽에서는 매일 싸우면서 사는 삶이 지긋지긋하다. 분노는 점점 더 커진다. 처음에는 언성을 높이다가 나중에는 욕을 한다. 그러다 물건을 집어던진다. 물건을 집어던지다보면 몸싸움이 벌어지고, 몸싸움을 하다보면 구타로 이어진다. 부부싸움이 잦고 그로 인해 관계가 안 좋아진다면 일단 싸움을 멈추고 봐야 한다.

상대가 내 요구를 들어주면 싸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1년을, 3년을, 10년을, 20년을, 30년을 반복했는데 상대가 변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상대는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잔소리해도 변하지 않는다. 상대가 그런 요구를 간섭으로 받아들이면 반감만 심해진다. 그럴 때는 서로에게 기대하는 대신 ‘무엇을 해야 내가 더 행복할까’를 생각하는 게 현명하다.

재해, 테러보다 무서운 것

아내는 남편이, 남편은 아내가 문제여서 자신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변화시키려든다. 하지만 남을 위해서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부부는 일촌이라지만 결국 남이다. 남을 바꾸려 하는 한 나는 계속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 차라리 더는 기대하지 말라. 더는 요구하지 말라. 더는 잔소리하지 말라. 남이 바뀌지 않으면 힘들다는 생각을 버려라.

아내가 아침을 차려주지 않아 짜증이 난다면 아내에게 아침을 차려달라고 하는 대신 아침으로 더 비싸고 맛있는 것을 사 먹자. 남편이 양말을 아무 데나 던져서 짜증스럽다면 남편더러 빨래바구니에 양말 넣으라고 하는 대신 식기세척기를 사서 설거지 줄일 생각을 하자.

건물이 무너지는 데는 자연재해, 폭발물, 부실공사 등 여러 요인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이 낡는 데서 비롯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사업이 어려워지거나 가족 중 누군가 중병을 앓게 되는 것은 일종의 사고다. 배우자의 불륜은 일종의 테러에 해당한다. 사랑 없이 조건만 보고 서두른 결혼은 일종의 부실공사다. 사소한 싸움이 누적되며 서로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결혼생활은 건물이 노후해 페인트가 벗겨지고 물이 새는 것과 같다. 계속 관리하고 수선해야 건물 수명이 오래가듯, 살다보면 생기게 마련인 사소한 갈등을 그때그때 잘 해결해야 결혼생활도 오래간다. 다툼이 누적되면 결혼생활은 점점 허약해지고, 그런 상태에서 불행한 일을 당하면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걱정도 습관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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