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 의심신고 받고도 “격리 필요없다” 안이한 대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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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확산 비상]부실 대응에 초기방역 실패

침통한 문형표 복지장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메르스 확산 방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문 장관은 이날 “메르스의 전파력에 대한 판단이 미흡했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문 장관 뒤는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오른쪽부터).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침통한 문형표 복지장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메르스 확산 방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문 장관은 이날 “메르스의 전파력에 대한 판단이 미흡했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문 장관 뒤는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오른쪽부터).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중동 국가들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통제하지 못한 건 그곳의 의료 환경이 한국의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 선진국 한국에서 환자가 급증하고, 중국에까지 전파시킨 건 난센스다.”

한 보건 전문가의 지적이다. 의료 환경이 세계 정상 수준인 한국에서 메르스에 대처하는 정부와 의료계의 자세가 얼마나 안이했는지를 지적하는 일침이다.

○ 메르스 위험에 대한 인식과 교육 부재

메르스 확산의 1차 원인은 메르스에 대한 국내 의료진의 인식 부족에 있다. 신종 감염병 메르스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해 유럽 아프리카 등에도 번지는 상황이었는데 3년 동안 국내에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국내 최초 감염자인 1번 환자는 4일 중동에서 귀국해 11일 발병 이후 20일 확진까지 국내 4개 병원을 드나들 수 있었다.

1번 환자가 처음 방문한 3개 병원은 그의 중동 방문 이력을 체크하지 않았거나, 알고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18일부터 입원한 마지막 병원의 보고로 겨우 세상에 존재를 드러냈다. 현재까지 확진 환자 대부분이 이 기간 1번 환자와 접촉한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중동을 다녀온 사람이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당연히 메르스를 의심해야 한다”며 “보건 당국이 일선 의사들에게 메르스의 위험을 알리고 대응 매뉴얼을 교육하는 데 소홀했다”고 말했다.

○ 보건 당국의 부실한 의심환자 대처

일선 병원의 의심환자 신고를 받은 보건 당국의 대응도 미숙했다.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중국으로 출국한 10번째 환자가 대표적이다. 10번 환자는 지난달 19일부터 열이 나다 21일 자신의 아버지인 3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자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증상을 설명했다. 하지만 보건소 담당자는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게 어떻겠느냐”고 답했을 뿐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만약 의심신고가 이뤄졌다면 중국 출국도 막을 수 있었고, 중국으로의 전파 등 국제적 망신도 피할 수 있었다.

6번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료진은 6번 환자를 받기 전 질병관리본부에 환자의 증상을 설명하며 “메르스 의심환자 같은데 받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환자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일반 병실로 받으라”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6번 환자는 결국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보건 당국은 그제야 환자를 이송해 간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 당국이 메르스의 전파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질병관리본부는 최초 환자 발생 시 “메르스는 환자 1명당 전파력이 약 0.7명으로 2m 이내의 근접 접촉을 1시간가량 해야 전파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1번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쓰지 않은 사람, 5분가량만 짧게 접촉한 의료진까지 감염되면서 ‘공기 중 전파 가능성’까지 의심되는 상황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메르스에 대한 정부 대응이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라고 사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 부실한 역학조사 시스템

보건 당국의 역학 조사도 부실했다. 3번 환자가 지난달 21일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그를 간호했던 딸인 4번 환자와 부인은 격리됐다. 하지만 아들인 10번 환자의 존재는 그가 중국으로 출국한 다음 날인 27일 뒤늦게 파악됐다. 역학조사관들은 가족의 진술에 의존해 조사할 수밖에 없는데, 3번 환자 가족이 아들의 존재를 숨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건 당국에 보고하지 않거나 거짓말할 경우 처벌한다는 방침이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이 때문에 역학조사관에게 환자 가족의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제한적 수준의 조사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메르스 확산이 의료 전달 체계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내에선 환자가 원하면 사실상 병원을 비교적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1차 의료기관 의사가 2차, 3차 의료기관과 의사를 지정해 환자를 보낸다.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지만 중요 감염병의 경우 확산 방지를 위해 외국의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민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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