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여중생 2명을 성희롱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기소된 윤모 씨(32)에 대한 상고심에서 경찰 조사와 피해자 법정 증언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밟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윤 씨는 2013년 7월 부산 동래구에서 귀가하던 10대 여중생 A 양을 따라간 뒤 자기 바지에 손을 넣고 성기를 만지면서 “너희 집을 알았으니 다음에 또 보자”며 성희롱을 한 혐의를 받았다. 같은 달 길 가던 또 다른 여중생 B양의 어깨를 두 번 치면서 “몇 살이야. 그 나이 애들도 ‘뽕(브래지어 보형물)’을 넣고 다니냐. 나 나쁜 사람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래”라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 혐의도 있었다.
1심에서 A 양은 법원으로부터 4차례에 걸쳐 증인 출석 요청을 받았지만 시험 준비, 학업, 불안감 등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진술 조서가 증거로 인정받으려면 진술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등의 상태인 경우를 제외하곤 직접 조서 내용이 옳다는 진술을 법정에서 해야 한다. 진술자가 계속 출석하지 않으면 검찰이 구인장 발부를 요청하고 법원이 이를 집행하도록 돼 있다.
당시 검찰은 A 양 모친에게 전화로 수차례 출석을 독려했지만 거부하고 있다는 의견서만 법원에 제출하고 구인장 발부를 신청하지 않았다. 1심은 A 양의 나이와 피해 내용, 보호자의 태도 등을 고려할 때 구인을 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고 형소법의 예외 규정을 적용해 A 양의 법정 출석 없이 윤 씨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윤 씨가 이미 같은 혐의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지 두 달 만에 재범을 저질렀다는 점이 가중처벌의 사유가 됐다.
2심은 A 양의 잇따른 출석 거부가 형소법 314조에 규정된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경찰 조서가 증거로서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형소법 314조에 따르면 법정 진술 없이 조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되려면 진술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등의 상태에 있어야 하고, 진술서가 믿을 수 있는 상태에서 쓰였다는 게 증명돼야 한다.
2심은 A 양이 적법절차에 따라 법정에 출석해 증언을 거부하거나, 구인장이 발부됐지만 집행되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점으로 볼 때 A 양의 행동이 형소법상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경찰 조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A 양이 심문에 응할 수 없을 만큼 중병을 앓는 게 아니라는 점도 고려됐다. A 양은 윤 씨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 화상으로 증언할 수도 있었지만 완강하게 법정 증언을 거부했다.
2심은 사건 발생 2~3달 뒤에 이뤄진 경찰 조사에서의 수사 방식도 적법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당시 A, B 양은 경찰이 제시한 윤 씨의 운전면허증 사진 하나만 보고 범인으로 지목했는데, 이 과정이 적법한 범인식별 절차를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상착의가 유사한 여러 명을 동시에 대면시키거나 여러 장의 사진을 제시해 그 중 한 명을 지목하게 했어야 하는데, 잠깐만 스쳐보고 아예 모르는 사이인 윤 씨를 사건 발생 2~3개월 뒤에 사진 한 장만 보고 범인임을 확신한 진술은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이 없다”고 판단하며 윤 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유죄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인 사건에서 적법절차를 거친 증거를 적용하지 않으면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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