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밤. 시간은 11시를 넘겨 1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부슬부슬 비까지 내렸다. 우산이 없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곧 택시만 잡으면 상관없었다. 목요일 밤 서울 종로에서 택시를 잡기란 보통 일이 아니지만 30분가량 기다리면 택시를 탈 수 있을 걸로 생각했다.
평소 자주 이용하던 콜택시에 전화를 걸었다. “확인한 뒤 연락드리겠습니다.” 콜센터 여직원이 전화를 끊었다. 15분쯤 지났을까, ‘죄송합니다, 배차 가능한 차량이 없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술 한 잔 덜 마시고 일어나서 버스 타고 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진짜 악몽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다행히 도로 위에 택시가 많았다. 하지만 택시를 타려는 사람도 많았다. 경쟁이 치열했다. 사람들은 차로까지 내려가 택시를 향해 일제히 손을 흔들었다.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예약’ 표시등을 켠 택시들은 마치 메뚜기처럼 줄지어 선 사람들을 옮겨 다니며 손님을 골랐다. 내 앞에도 한 대가 섰다. 조수석 창문이 살짝 열렸다. 새끼손가락이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힘껏 목적지를 외쳤지만 택시기사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내달렸다.
30분 동안 이렇게 3, 4대의 택시를 보냈다. 사람이 드문 청계천 옆길로 왔다. ‘택시가 오면 무조건 타고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내 빈 택시 한 대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성큼성큼 걸어가 곧바로 뒷문 손잡이를 당겼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짜고짜 택시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어, 어” 하면서 손잡이를 잡은 채 4, 5m를 따라갔다. 아니 끌려갔다.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하다 겨우 손잡이를 놓았고 택시는 쏜살같이 가버렸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자 울화통이 치밀었다. 내 돈 내고 택시도 못타는 상황이 황당했다. 부슬비를 맞으며 1시간을 더 기다린 끝에 오전 2시경 택시를 타는 데 성공했다.
이상은 약 1년 전 필자가 겪었던 ‘택시승차전쟁기’다. 이날의 ‘패전’ 이후 필자는 가급적 심야시간(특히 목요일 밤)에 택시 이용을 피한다. 아무리 유쾌한 술자리가 있어도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가급적 일찍 자리를 뜬다. 주변에는 이와 비슷한 전쟁을 치러본 사람이 많다. 물론 그들 역시 대부분 패전을 면하지 못한다.
서울지역 택시의 승차 거부를 해결하기 위해 조만간 ‘합승’(서울시는 ‘동승’이라고 표현한다)이 허용된다고 한다. 강남역 일대의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서울시는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그런데 조건이 까다롭다. 같이 타려는 사람이 반드시 ‘오케이’해야 하고 남녀가 각각 합승하려면 인원도 자리도 제한된다. 목적지가 제각각인데 도대체 요금을 얼마씩 낼지도 의문이다. 비싼 돈 내고 타면서 이렇게 신경 쓸 게 많고 택시기사와 옆자리 승객 눈치까지 봐야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일찍 술자리에서 일어나 버스를 타는 것이 몸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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