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지로 이름난 경북 경주시의 한 대형 리조트에는 지난주부터 ‘행사 취소’를 통보하는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본격적으로 번지면서 각 학교와 기업이 단체 행사를 속속 취소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경기지역 학교 3, 4곳이 이번 주부터 차례로 수학여행을 올 예정이었지만 없던 일이 됐다. 영남지역 대학의 학생 행사도 여러 건 무산됐다.
경주뿐 아니라 설악산 같은 수학여행지의 리조트나 대형 숙박업소마다 취소와 연기 통보가 이어지고 있다. 한 리조트 관계자는 “5, 6월에 전국 학교의 1학기 수학여행이 집중되는데 이번 달은 단체영업을 거의 포기한 상황”이라며 “취소 전화가 너무 많다 보니 이젠 예약 담당 전화를 받기조차 겁이 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관광·숙박 분야에 대형 악재가 찾아왔지만 업계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어 답답함만 호소하고 있다.
전통문화 체험과 숙박시설로 학생들이 많이 찾는 전북 전주시 전주전통문화관 역시 이달 방문을 약속했던 학교 약 70곳이 모두 예약을 취소했고 다음 달에 잡혀 있던 일정도 90% 이상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전주전통문화관 관계자는 “교육당국이 조심하라는 공문을 학교에 보내면 그 순간 대규모 학생 행사는 불가능해진다”며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와 비슷한 상황인데 뾰족한 대책이 없다”며 허탈해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3개월가량 방문객의 발길이 끊겼던 ‘악몽’을 떠올렸다.
단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관광버스 업계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서울지역의 대형 관광버스 업체 관계자는 “지난주부터 예약 취소 전화가 이어지면서 이번 달에 잡힌 수학여행과 단체여행은 거의 100% 취소됐다”며 “메르스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3일에는 전날까지만 해도 예정대로 가겠다던 학교가 수학여행 당일 아침에 못 간다고 연락하더라”라고 전했다.
보통 할부금과 보험료 등으로 매달 차량 한 대당 200만 원이 넘는 돈이 나간다. 단체여행이 많은 봄과 가을 성수기 때 벌어들인 수입으로 1년을 버티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봄철 영업 실적이 바닥에 머물면서 작은 업체들은 버티기 힘들어졌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달리 메르스 사태는 지금도 확산되고 있고 외국인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관광 산업에 미치는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철원 경희대 컨벤션경영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피해가 일시적이었고 애도 분위기 때문에 관광 산업이 위축된 일이었지만 메르스는 집객 효과가 있는 행사 전반에 직접 영향을 준다”며 “안전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관광 산업에 장기적으로 미칠 악영향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수제과자점 직원 임모 씨(24)는 “주말 외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면서 평소보다 매출이 60% 정도 줄어 세월호 참사 때보다 나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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