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듣보잡’ 뉴스 매체… 두 포털에 공짜 뉴스 제공하고
그 파워로 기업 협박해 생존
기업 괴롭히고 건강한 언론 생존 위협하는 사이비 정리할 규칙 만들어야
“인터넷뉴스 매체가 포털에 오르는 순간 막강한 파워를 발휘합니다.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매체)들이 회사와 오너를 공격하는 기사를 쓰는 건 속이 뻔히 들여다보입니다. ‘포털에서 내려줄 테니 돈을 내라’는 거죠.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하기도 하지만 매체 수가 너무 많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대기업 홍보실장이 털어놓는 인터넷 뉴스매체의 생태계다. 기자 3명이면 등록이 가능할 만큼 법적 요건이 느슨하다 보니 하루에도 몇 개씩 인터넷 매체가 생겨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한 인터넷 매체는 6000개에 이른다. 이 중 네이버, 다음카카오와 제휴를 맺은 매체는 1000개 정도. 이들 중 포털에 뉴스를 제공한 대가로 전재료(轉載料)를 받는 곳은 극히 소수다. 나머지는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에 공짜로 기사를 제공하는 대신에 두 포털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존을 영위한다.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두 포털이 인터넷 사이비 언론에 공동대응 방침을 밝힌 것은 그 폐해가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청와대 민병호 뉴미디어 비서관의 막후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 비서관은 전자신문 서울경제신문 기자를 하다가 인터넷신문 데일리안의 발행인 겸 대표로 10년 동안 재직했다. 그는 외부 강연 등에서 “인터넷 매체 문제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정리해 놓고 청와대를 나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네이버 관계자는 “매체가 난립하다 보면 악화(惡貨)가 양화를 축출하는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옥석(玉石)을 가리는 규칙과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매체에 문호를 열어놓는 포털의 성격상 스스로 매체를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언론단체들이 사이비언론을 퇴출시키는 규칙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다. 두 포털은 6개 언론단체에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인터넷 매체를 심사해 달라고 제의해 언론학회 등 4개 단체가 응했다. 신문협회 등 2개 단체는 유보적이다. 두 포털이 뉴스 콘텐츠를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내면서도 전재료 인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고 ‘쓰레기 청소’ 부담만 지운다는 불만이 일부 언론단체에서 나온다.
페이스북이 최근 개설한 인스턴트 아티클스(Instant articls)는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에도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언론사 사이트에 링크된 기사를 로딩하는 데 8초가 걸린다. 모바일 이용자들은 8초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사이트로 이동한다. 인스턴트 아티클스는 해당 언론사의 기사나 영상을 미리 로딩해 놓기 때문에 즉각 기사가 뜬다. 인스턴트 아티클스는 기사 게재 대상을 권위 있는 매체로 국한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NBC와 독일의 슈피겔, 발트 등 9개 언론사가 그 대상이다. 페이스북은 네이버나 다음카카오처럼 기사를 공짜 또는 헐값에 가져가지 않고, 광고수익을 7 대 3으로 배분해 콘텐츠를 생산한 언론사에 더 많은 몫을 준다.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의 인터넷 뉴스매체 정리 시도는 1980년대 언론기관 통폐합을 연상시킨다.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는 DBS와 TBC를 KBS에 통합시키고 지방신문은 각 도(道)마다 하나만 남겨뒀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으로 언론 통폐합을 주도했던 허문도 씨는 5공이 무너진 후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이렇게 진술했다.
“언론사 난립으로 사원들에게 월급도 못 주는 경영주가 있었고, 또 그런 관계로 사이비 기자가 넘치는 상황에서는 그런 언론사나 종사원은 사회적으로 기생충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5공의 언론 통폐합은 사이비 언론 정리를 핑계로 기자를 대거 해고하고 언론사를 순치시키려는 조치였다. 전두환 신군부는 언론사 사주들을 보안사 지하실로 불러 포기각서를 쓰게 하는 강압적인 방법으로 언론 통폐합을 했다. 1987년까지 이 틀이 유지됐다. 노무현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인 메이저 신문을 말려 죽이기 위해 인터넷 언론과 무료신문을 육성하는 정책을 썼다. 그 바람에 우후죽순으로 인터넷 뉴스매체들이 생겨났다. 지금의 언론 풍토에서는 ‘김영란법’이 아니라 ‘허문도법’이 필요하다는 자조(自嘲)가 언론계에서 나올 지경이다. 언론 윤리를 바로 세울 요량이라면 김영란법은 방향을 잘못 짚었다. 기업들을 괴롭히고 건강한 언론의 생존을 위협하는 ‘듣보잡’ 정리 작업을 청와대 비서관 한 명과 두 포털의 주문을 받은 언론단체들이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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