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在美 천재소녀’에 비친 일그러진 학벌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3일 00시 00분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동시 합격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린 김정윤 양의 아버지가 어제 합격증을 비롯한 모든 내용이 날조였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미국 워싱턴특파원단에 보낸 이메일에서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 상태였는지 살피지 못한 점, 오히려 아빠인 제가 아이의 아픔을 부추기고 더 크게 만든 점을 마음속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많은 학부모들이 부러워했던 ‘천재소녀’의 성공 스토리는 ‘치유가 필요한 소녀’의 거짓말 소동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이번 ‘해프닝’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강박감에 사로잡힌 듯한 10대 소녀의 이야기를 사리에 맞게 따져보지 않고 확대 재생산한 부모의 욕심이 자초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성적이 우수해도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더 클 수 있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자신의 성취로 믿고 매달리는 사이, 아이의 내면은 망가지고 있는 게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 양으로 인해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이 과도한 학벌주의로 일그러진 점도 다시 드러났다. 2007년 신정아의 학력위조 파문에선 예일대 간판이 이용됐다. 한국 학생의 성취를 뿌듯하게 생각한 대중, 이를 처음 보도한 미주 중앙일보와 이를 소개한 뒤 정정 보도를 냈던 국내 언론에도 상처를 남겼다.

올해 미국 대학의 졸업 축사 중에서 화제를 모은 것이 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뉴욕예술대 연설이었다. 그는 “여러분 앞에는 이제 ‘거절당하는 인생의 문’이라는 현실 세계가 열려 있다. 오디션에서 떨어지더라도 항상 ‘다음에!’라고 외치면서 희망을 잃지 말라”고 했다. 남들의 평가에 연연해서는 냉혹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의지와 실력을 키울 수 없다. 자녀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냉정히 판단하고 세상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돕는 일이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학벌주의#천재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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