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는 박근혜 정부의 취약한 위기관리 능력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메르스 첫 감염자 발생 이후 정부는 병원 명단을 공개하기까지 20일간 우왕좌왕했다. 감염자는 늘어났고 정부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빈틈 많은 매뉴얼만 믿고 초기 방역망이 뚫린 무능함은 그렇다 치자. 정보를 움켜쥐고 비밀주의로 나가다 2차 확산에 한몫한 것은 관료의 판단 능력을 의심케 한다.
세종시 비효율 극에 달했다
위기에 대응하라고 지난해 국민안전처를 출범시키고 사스 진압 후 2004년 질병관리본부까지 창설했다. 그런데 2003년 사스 방역 때 기민했던 정부가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지난해 완료한 세종시 행정부처 이전의 비효율성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생각이 든다.
보건복지부의 한 중견 간부는 “실무자들이 오래전에 위기단계를 격상하자는 건의를 했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며 답답해했다. 이 간부는 “(행정부처를) 세종시로 옮긴 탓도 있다”고 털어놨다. “장관이 청사에 하루밖에 없을 때도 있다 보니 조직의 긴장도가 확 떨어졌다”고 했다. 초기 단계부터 강력하게 메르스 방역과 격리에 나서지 못한 것을 통탄하면서 한 말이다.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국회 행정부 대통령관저가 반경 3, 4km 내에 모여 있다. 행정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국무총리실과 9부 2처 2청의 36개 행정기관을 서울에서 150km 떨어진 세종시로 옮겼다.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이 메르스 대응의 기동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메르스 대책기구가 5개나 만들어진 것도 서울과 세종시로 행정기관이 나뉜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3일 오전 비슷한 시간에 황우여 사회부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의 권준욱 기획총괄반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학교 휴업과 관련해 각기 엇갈린 견해를 밝히는 난맥상을 노출했다.
중앙행정기관의 60%가 들어선 세종시는 행정수도나 다름없다. 하지만 국무총리와 장관들의 공식 일정은 여전히 서울 중심으로 이뤄진다. 장차관이 국회 보고를 위해 서울로 가면 국장 과장도 동행해야 하고 정쟁 때문에 온종일 대기하다 돌아가는 일도 잦다. 세종시 공무원들은 “국회만 옮겨도 일의 절반이 줄어들 것”이라고 푸념한다.
세종시 문제는 해결 방안을 찾기 힘들게 돼 있다. 국회라도 옮기면 나아질 수 있겠지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관습법으로 서울을 수도로 규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상치될 수 있다. 현행법에는 ‘세종시에는 대통령 의회 사법부 등을 둘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국회의원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법을 고칠 리 만무하다.
바쁜 의료진 잡고 호통쳐서야
11일 열린 국회 메르스대책특별위원회 첫 회의는 열지 않는 것만 못했다. 메르스 퇴치 현장에서 급한 불을 꺼야 할 30여 명의 공무원과 바쁜 의료진을 불러놓고 일부 의원은 하나 마나 한 질문을 하면서 호통을 쳤다. 한 전직 장관은 “국회를 세종시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해 달라고 부탁했다. 메르스 진압 후 때가 되면 감사원이든 어디서든 정부의 대응 실패를 조목조목 따져볼 필요가 있다. 메르스 백서에서는 국가 긴급사태와 세종시의 효율성 문제도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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