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작업반을 관리하는 리더 역할을 맡고 나서 급격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호소하다 보직을 내려놓은 지 한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사망한 천모 씨의 아내(43)가 산재로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모터와 연료펌프 공장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천 씨는 2009년 5월 회사로부터 9명으로 구성된 작업반을 관리하는 리더 역할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고 두 번의 거절 끝에 마지못해 응낙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천 씨는 조원 9명 중 5명이 다른 부서에서 와 지시를 잘 따르지 않고, 대부분 나이가 많아 통솔에 어려움을 겪자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결국 한달 만에 리더 자리를 그만두고 생산직으로 복귀했지만 이후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자택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심폐정지 이후 저산소 뇌손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던 천 씨는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해주지 않자 아내를 통해 소송을 냈지만 자살시도 2년 만에 숨졌다.
1, 2심은 천 씨가 내성적인 성격인데다 리더 역할을 수행하려면 조원을 통솔해야 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야하는데 이에 어려움을 겪어 스트레스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회사로부터 크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건 아니라며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천 씨가 리더 자리를 그만둔 지 한 달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한 점도 리더 역할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살 시도와 직결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근거가 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천 씨가 리더 역할을 맡기 전에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정신과 진료 기록도 없었다며 리더직으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급격한 우울증을 유발했다고 판단해 산재를 인정하는 취지로 다시 재판하라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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