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는 보건당국이 막겠지만, 메르스 공포는 조심만 하면 일반 시민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공연예술계는 메르스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은 분야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4∼11일 일주일 동안에만 전국에서 무려 95건의 공연이 취소됐다. 관객 감염 우려와 함께 수십 명이 함께 연습하는 특성상 공연자들의 감염에 대한 우려도 컸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철저한 대비로 불필요한 메르스 공포를 극복하고 예정대로 공연을 진행하기로 해 눈길을 끌고 있다.
20일 오후 6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정기연주회를 갖는 ‘고우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메르스가 한창 확산되던 이달 초 격론을 벌였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일부 단원 사이에서 “공연을 취소하거나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됐기 때문. 이 단체 조진권 부운영위원장(트럼펫·의사)은 “연일 ‘방역망이 뚫렸다’ ‘확진자 급증’ ‘사망’ 이런 뉴스가 나오는 데다 좁은 공간에 70여 명이나 모여 연습을 하다 보니 단원들 사이에 불안감이 급속도로 커져 갔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연주회를 코앞에 두고는 간호장교로 복무하던 한 단원이 메르스 의료진으로 차출되기도 했다.
조 부운영위원장은 “악재가 겹쳤지만 단원 중 의사 약사 간호사 등 전문가들이 의논한 결과 정확한 정보에 따라 대비만 한다면 연주회를 연기하거나 취소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결론이 나자 이들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먼저 공지를 통해 기침, 가래, 발열 등의 증상이 있을 경우 즉시 수석이나 운영진에게 알린 후 연습을 쉬고 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다. 또 의사, 간호사인 단원들은 체온계를 지참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다행히 연주자 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연습 전후, 쉬는 시간에는 문을 활짝 열고 탁해진 공기를 환기시켰고, 문 앞에는 손세정제를 준비해 수시로 손을 씻도록 했다. 또 현악기 주자들은 불편을 참고 모두 마스크를 쓰도록 했고, 침이 바닥에 떨어지는 관악기 연주자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모두 종이컵을 별도로 준비하도록 했다. 물론 악기를 불지 않는 부분에서는 관악기 주자도 마스크를 쓰도록 했다. 약사인 단원은 마스크를 준비하지 않은 단원을 대비해 자신의 약국에서 마스크 수십 개를 가져오기도 했다. 또 불필요한 오해와 공포를 없애기 위해 카카오톡 단체방 등에서 메르스와 관련한 농담조차 금지시켰고, 이 같은 사항을 수시로 공지해 깜빡 잊고 실수하는 단원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
조 부운영위원장은 “공연장 측에도 손세정제 비치와 수시 방역을 요청했고, 이미 다 준비돼 있다는 답을 받았다”며 “이 같은 사실을 정확하게 단원들에게 알리고 대비하자 연주회 취소 또는 연기에 대한 말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고 모두들 연습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공연에서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서곡’,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멘델스존 교향곡 5번 ‘종교개혁’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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