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출국자들을 대상으로 한 발열 검사에 손을 놓고 있어 메르스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국가 이미지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공항검역소 대부분의 인력이 입국자들을 대상으로 발열 검사 등을 하고 있어 여력이 없다는 것이 출국자 검사를 하지 않는 이유다. 인력 충원을 요청해야 할 보건복지부는 직제 개편에 시일이 오래 걸린다며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 만약 메르스 감염자가 해외로 나가 병을 퍼뜨린다면 국가적인 망신을 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중국 홍콩 등 인접국이 철저한 메르스 검역에 나서면서 한국 여행객들의 불편과 불만이 가중되는 가운데 1차적으로 정부가 당장 출국자 발열 검사를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1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중국 난팡항공은 지난달 29일 인천공항에 취항하는 60개 항공사 모임인 항공사운영위원회(AOC)를 통해 한국 출국자를 대상으로 발열 검사를 실시해 달라고 국립인천공항검역소에 구두로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OC는 16일 공문을 보내 검역소에 열감지기를 설치해 출국자 전원을 대상으로 체온 감지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재차 요청했지만 검역소 측은 “수신했다”고만 알리고 여전히 묵묵부답인 상태다.
검역소는 현재 입국자 발열 검사는 하고 있지만 출국자 발열 검사는 손을 놓고 있다. 검역소 상위 기관인 질병관리본부는 “출국장이 여러 곳에 분포돼 있는 만큼 열감지기를 운영하고 관리할 인력이 부족해 출국자까지 발열 검사를 할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에서 8명, 검역소에서 1명의 인원이 인천공항 내 메르스 환자 격리 시설에 파견 나가 24시간 일하고 있으며 가동할 수 있는 나머지 70여 명의 인원도 입국자의 메르스 발열 감지 내지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여부까지 검역하고 있어 출국자 검사에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부처 간의 혼선이 가중되는 가운데 정부 당국이 출국자 방역 조치에 손을 놓고 있자 국가 이미지도 덩달아 실추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국내에서 발열 증상을 보인 뒤 중국에 입국한 내국인 메르스 의심 환자가 중국에서 확진 판정을 받아 한국의 허술한 의료 관리 체계가 전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과 홍콩 보건 당국은 메르스 유입을 막기 위해 한국발 여객기로 입국하는 승객들에 대한 검역을 대폭 강화했다. 홍콩은 한국발 여행객은 미열 증상만 보여도 의심자로 분류해 현지 병원에 격리한 채 메르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홍콩은 또 한국에서 오는 항공기의 경우 전용 게이트와 통로를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은 발열 등 증상 의심자는 아예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하도록 하고 의료진이 비행기 안에서 검진을 마친 뒤 내리도록 했다. 특히 한국과 중동 지역을 다녀온 입국자들을 상대로 발열 기침 호흡 곤란 등 메르스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입국 즉시 검역 당국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중국과 홍콩을 경유하는 한국인 승객들은 검역 강화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아예 경유편이 취소돼 여행 일정에 차질을 빚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메르스 2위 발병국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출국자 검역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에볼라가 창궐한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한 국가들은 즉각 국제공항과 항구를 통해 나가는 모든 출국자들에 대한 검사를 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김준명 연세대 의대 교수는 “정부가 관리하지 못하고 격리하지 못한 감염자들이 해외로 나가 외국에서 메르스 확산을 유발한다면 해당 국가에 부담과 큰 손실을 줄 수 있다”며 “이는 국가 위신의 실추로 이어지기 때문에 하루빨리 출국자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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