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막막했던 2주 격리… 서로를 믿은 102명의 승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0일 03시 00분


[메르스 어디까지]
격리 해제된 순창 장덕마을 가보니… 군수-읍장까지 나서 “조금만 참자”
감염-이탈자 한명도 없이 견뎌내… “들녘 나가 농작물부터 돌봐야죠”

19일 0시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덕마을 앞 도로. 어둠을 뚫고 오병조 노인회장(81)과 양희철 청년회장(41) 등 장덕마을 주민 7명이 마을 앞 초소로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 기다리던 황숙주 순창군수(68) 등 공무원 10여 명이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악수를 나눴다. 황 군수는 오 회장 등 주민들에게 “메르스 잠복기간 14일이 지나 자가 격리가 해제됐는데 왜 마스크를 쓰고 있느냐.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장덕마을 앞을 지키던 초소는 주민 할머니(72·사망)가 메르스 양성판정을 받았던 4일 밤 설치됐다. 자가 격리를 넘어 마을 주민 전체의 출입을 통제하는 강력한 선제적 차단대책이었다. 초소 설치 이후 장덕마을 63가구 주민 102명은 세상과 단절됐다. 다음 날인 5일부터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특히 장덕마을에 사는 일용근로자, 재래시장 상인, 노점상, 택시기사 등 주민 10명은 자가 격리와 마을 통제로 생계가 막막하게 됐다며 항의했다.

항의가 거세지자 황 군수는 6일 오후 5시 초소에서 주민 대표들을 처음 만났다. 주민들은 마을이 격리됐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마을 특산물인 복분자 주문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고 호소했다. 주민들은 “농사일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등 각종 불편사항을 전달했다. 황 군수는 농작물 일손 돕기, 복분자 판매 촉진에 적극 나서 생계에 지장을 주는 불편사항을 해소하겠다고 답변했고 이를 그대로 실천했다. 일용근로자 등에게는 긴급생계비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순창군 보건소 직원들과 읍사무소 직원들은 하루 두 번씩 장덕마을에 들어가 발열 여부를 체크하고 생필품을 전달했다. 이들은 봉쇄된 장덕마을을 세상과 연결하는 소통창구 역할을 하며 신뢰를 쌓았다. 오수환 순창읍장(58)은 격리가 시작된 4일부터 19일 0시까지 14일 동안 장덕마을에서 머물렀다. 그는 매일 방송을 통해 “조금만 참으면 격리가 해제된다”며 주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다독였다.

격리가 해제된 장덕마을은 빠르게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대다수 주민은 들녘에 나가 그동안 돌보지 못한 농작물을 살폈다. 성인식 이장(58)은 “밀린 일이 너무 많아 정리하는 데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격리가 해제됐지만 23일까지 관찰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다. 추가 감염자 없이 14일을 버텨낸 장덕마을의 메르스 극복기는 주민 모두가 소통과 신뢰로 합심해 이뤄낸 것이었다.

순창=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격리#메르스#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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