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해지면 뜬다… 관할구역 없이 뛰는 ‘치안 리베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0일 03시 00분


다목적 기동순찰대 출동현장

서울 구로경찰서 다목적 기동순찰대원들이 4일 오후 10시경 구로구 가리봉시장 일대를 걸으며 순찰하고 있다. 대원들은 매일 4∼10명씩 출동해 동네 구석구석을 살피고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관할구역에 상관없이 현장에 출동한다. 이런 기동순찰대는 현재 전국 11개 경찰서에서 운영 중이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울 구로경찰서 다목적 기동순찰대원들이 4일 오후 10시경 구로구 가리봉시장 일대를 걸으며 순찰하고 있다. 대원들은 매일 4∼10명씩 출동해 동네 구석구석을 살피고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관할구역에 상관없이 현장에 출동한다. 이런 기동순찰대는 현재 전국 11개 경찰서에서 운영 중이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무슨 불편을 끼쳤냐고?”

4일 오후 9시 35분경 서울 구로구의 식당 앞. 술에 잔뜩 취한 이모 씨(56)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경찰 두 명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식당 앞에는 손님 대여섯 명이 테이블 앞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식당 주인은 이 씨가 테이블 앞에서 가방을 깔고 앉은 채 “술을 달라” “죽여 버리겠다”며 행패를 부리자 참다못해 경찰을 불렀다. 이 씨는 경찰이 오자 “내 조카도 경찰이다. 어디 해보자”며 윽박질렀다.

2분쯤 지났을까. 경찰 세 명이 추가로 달려왔다. 다섯 명의 경찰이 둘러서서 “손님들이 불편해하지 않느냐”고 하자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카 같은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가야겠어. 이따 다시 와야겠구먼….”

이 씨가 ‘순한 양’처럼 꼬리를 내리자 인근 상인 대여섯 명이 우르르 달려와 경찰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매일 손님에게 술 달라고 하고, 죽여 버린다고 협박해요. 진짜 환장할 노릇이에요!” 경찰은 이날 피해 업주들의 진술서를 받아 이 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이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서울 구로경찰서(서장 이원영)의 ‘다목적 기동순찰대’. 통상 112 신고를 하면 순찰차 1대에 경찰 2명이 출동하지만 기동순찰대는 순찰차 2∼5대에 경찰 4∼10명이 한꺼번에 출동한다.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과 역할은 비슷하지만 치안 수요가 많은 야간 시간대(오후 8시∼이튿날 오전 8시)에만 활동한다.

경찰청은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전국 11개 경찰서에 기동순찰대를 출범시켰다. 현재 경찰서마다 40∼50명의 대원이 활동하고 있다. 경찰청은 8월 전국 19개 경찰서에 기동순찰대를 추가로 설치하고 매년 설치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다.

출동 인원 늘려 치안 역량 강화

112 신고가 접수되면 대부분 경찰 2명이 탄 순찰차 1대가 현장에 출동한다. 전체 출동 중 88.4%(2013년 기준)가 이런 ‘나 홀로’ 출동이다. 하지만 경찰 두 명만 현장에 출동하면 간혹 사건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생긴다. 경찰이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구로서 기동순찰대 오왕권 경위(33)도 지난해 초 구일지구대에 근무할 때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늦은 밤 폭행 신고가 접수돼 동료 경찰과 둘이 현장에 출동했다. 가해자는 줄행랑을 쳤고 피해자인 40대 A 씨는 술에 취한 채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오 경위는 피해자 치료가 우선이란 생각에 119 구급대를 불렀다. 하지만 A 씨는 “지금 뭐 하는 거냐. 가해자를 왜 빨리 안 잡느냐”며 욕을 하고 멱살을 잡았다. 심지어 전화로 친구 2명을 불러 함께 주먹을 휘두르며 거칠게 항의했다. 오 경위는 “치료부터 해야 된다”며 달랬지만 술에 취한 상태라 막무가내였다. 보다 못한 행인들이 “경찰관이 맞고 있다”며 112 신고까지 하기 시작했다. 결국 10분쯤 뒤 다른 순찰차가 와서 A 씨 일행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거했다. 오 경위는 “그동안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기동순찰대는 많은 경찰이 함께 출동하다 보니 가해자 검거와 피해자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현장 출동 인원이 늘면서 법 집행에 반발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문창희 기동순찰대 3팀장(55)은 “기동순찰대가 출범한 이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업무 처리를 하지 못하도록 막무가내로 공무집행 방해를 하는 사람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구로서는 기동순찰대 출범 이후 야간 시간에 공무집행 방해 사례가 10%가량 줄어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할구역 넘나들며 피의자 검거

지난달 24일 오후 9시 50분경. 기동순찰대원들이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에서 순찰을 돌고 있었다. 한 주민이 뛰어와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람이 칼에 찔렸다’는 112 신고가 막 접수된 직후였다. 아버지가 과도로 아들의 허벅지와 가슴에 상해를 입힌 사건이었다. 주변을 순찰 중이던 순찰대원 8명이 곧바로 현장에 도착해 피의자를 검거하고 피해자를 이송했다.

기동순찰대는 관할 구역이 따로 없어 경찰 내에선 ‘리베로’로 불린다. 다른 경찰서 관할 지역에서 사건이 발생해도 출동한다. 집단범죄, 지역을 넘나드는 광역범죄,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4월 24일 오전 2시 50분경 영등포경찰서 관할인 대림역 앞길에서 ‘퍽치기’ 강도가 발생했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로서 기동순찰대원 8명은 공조 요청을 받고 출동해 현장 부근에서 약 40분간 검문 검색을 해 피의자 3명을 검거했다. 2월 3일 오전 2시 반경 금천경찰서에 오토바이 날치기 신고가 접수됐을 때도 순찰대, 금천서뿐 아니라 동작경찰서 등이 함께 추격한 끝에 날치기범을 붙잡았다.

통상 112 신고는 오후 10시∼오전 2시에 몰린다. 최근 신고가 급증하면서 야간 치안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112 신고 건수는 2009년 778만8866건에서 지난해 1877만9003건으로 5년 만에 2.4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휴대전화가 보급돼 신고가 간편해진 것도 한 이유다. 사유는 다양하다. “옆집에서 개가 시끄럽게 짖는다”고 신고하는 사람도 있다. 민원 같아 보이지만 옆집에 사람이 죽어서 개가 짖는 등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경찰은 일단 출동해서 현장을 확인해야 한다.

기동순찰대는 오후 8시부터 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취약 지역’을 집중적으로 순찰한다. 구로서의 경우 안양천을 기점으로 동부권(신도림동 구로동 가리봉동)과 서부권(고척동 개봉동 오류동)으로 구역을 나눈 뒤 순찰차 3, 4대가 함께 다니면서 동네를 살피기 시작한다. 순찰대 이명동 경장(37)은 “순찰차 여러 대가 골목길까지 중점 순찰을 하는 것으로도 범죄를 초기에 예방하거나 확산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이 싸우려다가도 순찰차 여럿이 지나가면 멈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경찰서 다목적 기동순찰대 소속 이진철 경위(41·오른쪽)와 정지열 경장(31·가운데)이 4일 구로구의 한 시장에서 취객의 행패로 피해를 입은 식당 주인의 진술을 듣고 있다.
서울 구로경찰서 다목적 기동순찰대 소속 이진철 경위(41·오른쪽)와 정지열 경장(31·가운데)이 4일 구로구의 한 시장에서 취객의 행패로 피해를 입은 식당 주인의 진술을 듣고 있다.
동네 어려움 살피는 지역경찰

‘문안순찰’도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게 “괜찮으세요? 별일 없으세요?”라고 안부를 물으며 순찰하는 식이다. 만취 상태로 도로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호자에게 인계하고, 도로에서 미끄러져 쓰러져 있던 할아버지를 돕고, 오토바이 짐칸의 물건을 쏟은 뒤 쩔쩔매던 남성을 위해 물건을 실어주기도 한다.

특히 구로에는 중국 동포 등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어 순찰대의 도보 순찰은 낯선 땅에서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따뜻함을 전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기동순찰대 이기홍 경장도 지난해 11월 22일 오후 10시경 순찰을 돌다가 이런 경험을 했다. 이날 이 경장은 중국인 여행객 B 씨(40)를 만났다. B 씨는 한국에 여행을 왔다가 짐 가방을 모두 잃어버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영사관 업무가 끝난 금요일 밤이어서 꼼짝없이 월요일까지 길바닥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경장은 보호시설에 연락해 딱한 사정을 상세히 설명했고, B 씨는 시설에서 편안히 숙식했다. B 씨는 “낯선 타국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었는데 도움을 준 한국 경찰관에게 감사한다”며 감동했다고 한다.

밤에만 일하는 경찰

기동순찰대와 일반 지역경찰의 가장 큰 차이는 근무 형태다. 통상 지구대에 근무하는 경찰은 ‘주간-야간-비번-휴무’로, 낮 근무와 밤 근무를 번갈아가면서 한다. 하지만 기동순찰대는 야간(오후 8시∼다음 날 오전 8시) 근무만 전담해 ‘야간-야간-비번-휴무’로 일한다. 4일에 한 번꼴로 쉬지만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강력사건이 주로 밤에 발생하는 만큼 업무 강도 역시 센 편이다. 기동순찰대 이진철 경위(41)는 “연달아 이틀을 밤을 새우니 체력적 부담이 큰 편이다. 낮에 잠을 청해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밤에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루 쉬고 출근하는 첫날은 비교적 몸 상태가 괜찮지만 연 이틀 야간근무를 하다 보면 힘에 부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기동순찰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야간근무 중 돌아가면서 4시간씩 ‘대기시간’을 갖고 잠깐 눈을 붙인다. 남들처럼 가족과 함께 잠을 자거나 밤에 가족 곁을 지키지 못하지만 사명감으로 버틴다. 기동순찰대 정지열 경장(31)은 야간근무를 서던 지난달 31일 오후 11시경 진통하던 만삭 임신부 아내(30)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

당시 아내는 진통이 심해지자 글자도 제대로 쓰지 못해 ‘ㅇㅏㅏㅏ’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정 경장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늘 남편의 경찰 업무를 우선시하던 아내는 “올 수 있느냐”고 묻더니 “참아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정 경장은 야간 순찰을 한 뒤 대기시간이 돌아온 1일 오전 4시에야 조퇴해 달려갔다. 아내는 캄캄한 집에서 혼자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날 오후, 오랜 진통 끝에 딸이 무사히 태어났다. 정 경장은 “힘들지만 시민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갖고 일한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치안#기동순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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