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은 슬로푸드(slow food)다. 전통 방식으로 재배, 채취한 재료를 자연의 힘을 빌려 숙성, 발효시켜 웰빙 식재료로 업그레이드시킨다. 재료만이 아니다. 패스트푸드(fast food)와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기름을 적게 쓰는 담백한 조리법이다. 한식은 기름에 튀기는 것보다 찌거나 삶거나 굽는 게 많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식을 영양학적으로 적절한 균형을 갖춘 모범음식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식을 즐겨먹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해본 결과, 한식은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병을 예방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4년간 관찰해보니 심혈관 질환, 당뇨병의 주요 위험인자인 콜레스테롤과 혈당 수치가 눈에 띄게 내려갔다. 한식을 먹었을 때의 콜레스테롤 감소량은 미국 평균 일반식보다 5배 이상, 혈당 감소량은 미국 정부가 개발해 보급한 권장식보다 6.5배나 효과가 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K-푸드(한식, 또는 식품 한류)를 선보이고 있는 해외의 외식업체 매장(한국 업체가 운영)은 2014년 말 기준 3726곳. 전년도(2717곳)보다 37%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피자, 일본의 스시, 태국의 팟타이, 인도의 카레, 베트남의 쌀국수…. 세계 각국은 자국의 고유 음식을 세계화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맛과 영양을 겸비한 K-푸드는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이 충분하다. 그 최전선에 전주대학교 한식조리학과가 있다.
전주대는 4년제 대학 중 최초로 2000년에 ‘전통음식문화전공’을 개설했다. 그런데 2008년부터 정부가 한식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식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할 필요성이 생겼다. 전주대는 2010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한식조리특성화대학으로 지정되면서 학과 이름도 ‘한식조리학과’로 바꿨다.
차진아 한식조리학과장은 “4년간 24억 원의 국고 지원을 받은 덕분에 국내 최고 수준의 수업환경과 체계적인 학년별 교육과정을 갖추게 됐다. 2014년과 2015년 한식특성화대학 취업지원사업으로 연간 1억 원씩 추가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학과는 ‘HANSIK 5대 전략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Healthiness(한식의 우수성 규명)-Assets(전통음식문화 계승)-Networking(국내외 네트워크 구축)-Standardization(한식 표준화 연구)-Internationalization(한식 세계화 견인)이다. 마지막 이니셜 K는 한식(Korean Cuisine)을 뜻한다.
한식조리학과는 한식만 가르칠까. 아니다.
‘한 가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열 가지의 배경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심도 있는 한식 교육을 위해 양식, 일식, 중식, 제과, 제빵 등 다양한 조리(요리)와 그 문화, 식품 관련 전문 지식을 커리큘럼으로 구성해 놓고 있다. 더욱이 ‘음식의 고장’ 전주에서 한식을 배우는 것은 금상첨화다.
정규 교과과정은 한식 심화 교육을 비롯해 국내외 조리기술, 식문화, 식품 및 영양학 전반에 걸쳐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취업 실무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체 현장실습을 의무화(9학점 필수)하고 있으며 국내외 인턴십 등을 통한 진로설정에도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비교과과정도 다양하다. 차 교수는 “한식 세계화 인재양성 글로벌 한식마스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산업체 멘토링 시스템, 취업약정제, 현장견학 및 탐방 등을 실시하고 있다. 조리교사 교직, 식품영양학 연계전공 운영 등으로 다양한 진로설계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필자가 인터뷰한 졸업반 학생 3명의 꿈과 목표는 모두 달랐다.
김영수 씨(4학년)는 “식품의 가공, 미생물 등을 공부하면서 식품 개발 연구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됐다. 흥미진진하고 도전해볼 만한 분야다. 한식조리학과를 졸업했다고 조리사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씨의 롤모델은 학과 선배인 정지영 씨(샘표식품)와 노관우 씨(면사랑). 정 씨는 샘표식품의 인기품목인 ‘연두’의 개발자이며, 노 씨는 소스개발1팀 과장으로 2013년, 2014년 최우수 사원으로 선정됐다.
전남조리과학고 출신인 전누리 씨(4학년)의 꿈은 르 꼬르동 블루(120년 전통의 프랑스 요리학교) 같은 한식전문요리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조리특성화 고교를 졸업했지만 한식전문요리학교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갖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교수님과 소중한 강의들이 내 꿈의 길라잡이가 됐다”고 말했다.
박수현 씨(4학년)는 올 1학기 때 전주에 있는 한국전통문화고교에 교생실습을 다녀왔다. 학과에 개설돼 있는 교직과정(2급 정교사 자격증)을 이수 중인데 장차 조리특성화고교 조리교사가 그의 목표다.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내가 가진 지식을 남에게 전달하는데 관심이 더 많다. 이번 교생실습 때 교사가 내 적성에 잘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식조리학과의 교직이수제도는 나의 꿈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강조했다.
박 씨의 롤모델은 2014학년도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해 전북 임실의 한국치즈과학고에 조리담당 교사로 부임한 홍여진 선배(2007학번).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재학 중 교직과정을 이수한 홍 씨는 그해 딱 1명을 뽑는 전북지역 조리교사 임용시험의 주인공이 됐다.
이 학과 졸업생들은 ‘한식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우리나라 해외 공관(대사관, 영사관) 관저조리사로 가장 선호하는 셰프가 바로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출신들, 최근 5년간 약 30명이 미국(워싱턴 대사관,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애틀랜타 총영사관) 등 25개국 관저로 나가 근무하고 있다.
전주대는 평생사제동행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입학부터 취업까지 전폭적이고 세심하게 학생지도를 한다는 의미다. 한식조리학과는 학과의 특성상 사제지간, 동문간의 네트워크도 매우 긴밀하다.
차진아 교수는 “졸업생이 지도교수에게 청첩장을 보내는 학과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전주대 한식조리학과는 가족적인 분위기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고, 이는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이후에도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5학년도 1학기 등록금은 347만 원이었지만 특성화지원금과 학교 장학금, 교수진이 마련한 외부장학금과 추천장학금 등이 많아 대부분의 학생들은 등록금의 절반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학과는 2015학년도(정원 55명)에 수시로 80%, 정시로 20%를 선발했다. 수시는 일반학생전형(학생부 100% 반영)을 비롯해 학생부와 서류(비교과, 자기소개서)를 함께 반영하는 다양한 전형(슈퍼스타, 예비 창업자, 기회균형선발, 농어촌학생, 특성화고교 출신자)을 통해 학생을 뽑고 있다.
2015학년도 수시 일반 전형의 경쟁률은 8.22 대 1로 합격자 성적 평균은 4.1등급. 정시(수능 100% 반영) 합격자의 환산 총점 평균은 860.9점(백분위 평균 53.6점)이었다.
전주대 한식조리학과에 합격하려면 ‘1분 자기소개’를 충실히 준비해야 한다. 차 교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학과를 지원했는지, 조리에 대한 소신과 열정은 어느 정도인지 1분간의 자기소개로 바로 판가름 난다. 전공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준 사람과 책 제목을 얘기해 보라는 추가질문을 하기도 한다.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학생이라면 진지하게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선택했다는 강한 인상을 면접관에게 줄 수 있다”고 면접 노하우를 공개했다.
기러기는 떼를 이뤄 V자 비행을 하는데 혼자 날아갈 때보다 70% 이상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한다. 앞선 기러기의 날갯짓 덕분에 공기저항을 덜 받고 상승기류를 쉽게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특히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대학시절에 어떤 스승과 멘토, 동료, 선후배를 만나느냐는 무척 중요하다.
이런 점을 두루 고려한 끝에 전누리 씨는 전주대 한식조리학과를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전주대 한식조리학과는 한우 등급으로 1++(6단계 중 최고 등급. 일명 ‘투뿔’)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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