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가수 노사연 씨가 부른 ‘바램’의 한 구절이다. 호소력 있는 음색과 좋은 가사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허나 필자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심경이 복잡하다. ‘바램’이라는 노래 제목 때문이다. 노 씨는 자신의 히트곡 ‘만남’이란 노래에서도 줄곧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라고 했다.
우리 말법에 따르면 바램은 틀린다. ‘바람’이 맞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는 마음이 바람이니 노래 제목도, 노랫말도 바람이어야 옳다. 바람은 동사 ‘바라다’에서 왔다. 그래서 ‘바라, 바라고, 바라며, 바랐고’ 등으로 적는다. 문제는 언중이 다른 입말을 즐겨 쓴다는 것이다. 특히 ‘바라’라는 말은 ‘네가 잘되길 바라’ ‘뭘 더 바라?’로 써야 맞지만 ‘네가 잘되길 바래’ ‘뭘 더 바래?’라고 말하는 이가 훨씬 많다. 바램도 그렇다.
바램이란 단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래다’에서 왔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뜻이 전혀 다르다. 바래다는 ‘볕이나 습기를 받아 색이 변하다’ ‘가는 사람을 일정한 곳까지 배웅하다’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바램을 두고 ‘바람 풍(風)’의 ‘바람’과 구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쓴 결과라거나, 사투리가 서서히 세력을 얻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말맛을 앞세운 바램이 말법의 바람에 도전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말맛이 말법을 누른 예가 없진 않다.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상록수’의 첫 구절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에 등장하는 ‘푸르른’이 그렇다. 말맛이 좋고 리듬감이 있어선지 많은 이가 ‘푸르른’이라고 쓴다. 그런데 우리말에 ‘푸르르다’는 단어는 없다. 따라서 ‘푸르른’도 없다. 바른말은 ‘푸르다’이니 ‘푸른’과 ‘푸름’이 맞다. 그런데도 말맛에 이끌려 ‘푸르른’ ‘푸르름’이라고 쓰는 이가 많다. 신문과 방송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푸르르다’와 ‘푸르름’은 아직 표준어가 아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우리말에는 ‘러불규칙 형용사’가 딱 2개밖에 없다. ‘푸르다’와 ‘누르다’이다. 그런데 ‘누르른’ ‘누르름’이라고 쓰는 이는 없다. 언중의 말 씀씀이에 언어의 생명력이 달려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다. 바램도 ‘푸르른’처럼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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