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한양도성 창의문(서울 종로구). 해발 338.2m인 인왕산을 마치 흰 뱀처럼 휘감은 듯한 성벽을 바라보던 한 여성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현재 12.8km 정도 남아 있는 한양도성은 평지와 산을 오르내리며 성곽이 연결돼 있다. 비슷한 규모의 해외 성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방식이다. 산세를 그대로 활용해 성곽의 방어력을 높인 것이 특징이지만 그만큼 짓고 관리하는 데 어려움도 컸다.
현재 한양도성의 안전과 보존을 책임지는 곳은 서울시의 한양도성도감. 조선시대 때 명칭을 그대로 살렸다. 장마철을 앞두고 실시된 한양도성도감의 현장 점검에 동행했다.
이날 점검은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됐다고 평가받는 ‘인왕산 구간’(창의문∼돈의문 터) 4km에서 이뤄졌다. 성벽 대부분이 깎아지른 암벽에 서 있는 탓에 근처에 오르는 것조차 버거웠다. “여기 성벽은 마치 배가 부른 것처럼 불룩 튀어나와 있죠?” 벼랑길을 한참 오르던 배재식 서울시 주무관(44)이 성벽의 한쪽 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랜 세월 성벽 안쪽으로 물이 스며들면서 토질과 잡석이 바깥 성돌을 밀어내며 나타나는 ‘배부름 현상’이다. 현재 한양도성에서 배부름, 석재 균열, 수목 생장 등으로 각종 변형이 일어난 구간은 총 13곳. 인왕산에서는 총 3곳에서 배부름 현상이 목격됐다.
문제가 확인되면 첨단 장비가 동원돼 즉각 점검이 이뤄진다. 우선 ‘광파기’(거리, 높이 등을 측정하는 장비)를 이용해 성벽 전체의 높이 변화를 확인한다. 이어 경사계를 달아 성벽의 각도를 확인하고 성돌 사이의 이격을 정밀하게 측정했다.
김종범 주무관(38)은 “올 해빙기에 내시경을 갖고 성벽 내부의 안전점검을 했을 땐 빈 구멍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면서도 “한 달 뒤 검사 결과가 나오면 안전성 여부를 확실히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양도성 점검에 이런 장비가 동원된 건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해까지는 우기와 눈 녹는 해빙기에 맞춰 오직 육안으로 성벽의 안전 여부를 판단했다. 이러다 보니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변형된 성곽을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한다”는 의견과 “그대로 둬도 안전하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 전문 안전진단 업체와 용역 계약을 맺고 정밀진단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내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한양도성의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도 작용했다.
서울시는 앞으로 2주에 걸쳐 한양도성과 함께 북한산성 탕춘대성(창의문에서 북한산 비봉 아래로 이어지는 4.8km 성곽)까지 안전점검을 할 계획이다.
배 주무관은 “도성 대부분이 산 위에 있는 탓에 힘들게 오르내리며 점검하고 있다”며 “조상들의 걸작을 안전하게 잘 보존하고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얼굴로 오래도록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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