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어느덧 한 달을 넘기고 있습니다. 메르스가 단시간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우리나라 병원 이용 실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최초 진원지가 병원이었고 감염자 대부분이 병원에서 나왔기 때문이죠.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작정 대형병원부터 찾는 행태나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는 ‘의료쇼핑’ 등을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형병원에 가면 모든 병이 싹 가시는 것이 아닌데도 왜 굳이 대형병원을 고집하는 걸까요? 시민과 의료진에게 그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아울러 병원을 이용할 때 특히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제도적 허점은 없는지도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
“큰 병원 신뢰” vs “작은 병은 의원이 적합”
―얼마 전 남편이랑 세 살짜리 딸을 손비행기 태워주며 놀았는데 그 후 아이의 팔이 이상해 보였어요. 동네 정형외과에 갔는데 의사가 아이 팔을 이리저리 살펴만 보더니 별거 아닌 것 같다면서 그래도 걱정 되면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진료의뢰서를 받고 대형병원 어린이정형외과에 갔어요. 그곳 의사선생님은 딸아이 팔을 빨래처럼 한 번 비틀고 반깁스를 하고는 “팔이 빠진 거다, X레이 안 찍어도 되고 진료를 더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간단한 걸 왜 의원의 그 의사는 제대로 처치도 안 해주고 걱정만 키워준 걸까요? 물론 모든 1차 의원이 이렇진 않겠지만 어쨌든 대형병원에 더 신뢰가 가는 건 사실이에요.(36·주부)
―만성 발목 불안정성으로 고생이 심했어요. 동네 의원에선 아무리 치료해도 낫질 않아 큰 병원을 찾았죠. 제가 사는 울산에는 족부 전문의가 거의 없어요. 있다고 해도 서울의 대형병원 의사들처럼 오랜 경험을 쌓은 분이 드물죠. 그래서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을 찾았어요. 거기 의사는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한 뒤 인대 파열이란 소견을 냈어요. 바로 발목 재건 수술을 받았어요. 지방 의원에서는 그냥 물리치료만 해 줬는데…. 이러니 대형병원에 안 갈 수가 있겠어요?(22·대학생)
―유치원 다니는 큰애가 잔병이 많아요. 평소엔 동네 소아과를 가는데 한번은 고열에 심한 기침까지 겹쳐 대형병원에 갔어요. 환자들로 바글바글하더라고요. 예약시간에 맞춰 갔는데 30분이나 더 기다렸어요. 의사선생님이 ‘어디가 아프냐’ 묻고는 청진기 몇 번 대는 것으로 진료가 끝났어요. 3분이 될까 말까. 저는 왜 아이가 이렇게 자주 아픈지, 엄마로서 어떻게 아이를 관리하면 좋을지, 뭘 먹이면 좋은지 등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아무것도 못 물어봤어요. 혹시 자잘한 병인데 대형병원을 찾은 제가 잘못한 걸까요? 동네 소아과에선 그래도 충분히 설명을 해 주던데….(31·주부)
―우리나라는 환자들이 부담하는 진료비가 워낙 싸요. 그래서 병원 가는 것에 별로 부담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특히 감기몸살 같은 병은 충분히 쉬기만 하면 돼요. 굳이 병원 갈 필요도 없는데 진료비가 싸니 너무나 쉽게 대형병원을 찾아요. 감기 같은 걸로 우리 의원에 오는 손님 중에 ‘나 어디 대학병원 갈 거니까 진료 의뢰서 써주세요’ 하는 사람 정말 많아요. 처음에는 섭섭하기도 했지만 요새는 그러려니 해요. 1차 의원이 도대체 왜 존재하는지, 참으로 씁쓸합니다.(57·여·개인의원 의사)
“의료쇼핑 근절” vs “비급여진료 장삿속”
―의료급여일수를 연장하기 위해 사유서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종종 있어요. 모두 같은 증세로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는 ‘의료쇼핑’족이죠. 대부분 분기별로 받는 의료급여일수가 100일을 넘었더군요. 하루에 병원 4곳을 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얼마 전엔 한 환자가 와서 툴툴거렸어요. 의료급여 대상 1종이었다가 2종으로 바뀌었다면서요. 예전엔 돈 안 내고 병원 다녔는데 지금은 몇천 원 더 내야 한다면서…. 아까워서 병원 못 다니겠다고 하더라고요. 어찌나 황당하던지. 병원 진료를 꼭 받아야 할 사람들이 이런 분들 때문에 피해 보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47·개인의원 의사)
―가끔 약국을 방문하는 분들 중 각종 약봉지를 싸들고 오는 환자들이 있어요. 무슨 약인지 알려달라면서 말이죠. 얼마 전에도 한 60대 아주머니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들이라며 각기 다른 약봉지 5개를 들고 왔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약 성분들이 거의 똑같거나 비슷했어요. 할머니는 ‘약들이 집에 많은데 어디에 먹는 약인지 몰라 쌓아두고 먹지도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같은 증상을 두고 여러 병원에서 동일한 약 성분이 처방된다는 건 낭비 아닌가요. 이렇게 의료급여가 새고 있는 걸 방치해 두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네요.(40·약사)
―어느 날 찬물을 마시는데 이가 갑자기 시려와 동네 치과를 찾았어요. 보자마자 바로 견적을 뽑더군요. ‘잇몸은 지금 응급 상황이어서 바로 치료 안 하면 치아가 다 빠질 거다. 충치 3개는 인레이로 하고, 기존에 크라운 치료(충치 치료) 한 것도 다 다시 하자. 사랑니도 지금 발치해야 한다’ 등 계속 겁을 줬죠. 그런데 크라운 치료만 해도 40만 원, 인레이도 30만 원 정도 들어요. 둘 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거든요. 고민하다가 다시 오겠다고 하곤 국립중앙의료원을 가 봤는데 웬걸, 거기서는 스케일링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잇몸 부기는 관리만 잘하면 되고, 충치로 손상된 치아 하나만 인레이로 교체하자더군요. 하마터면 깜빡 속고 괜한 돈 낭비 할 뻔했다니까요.(57·주부)
―운동을 하다가 어깨를 다쳐 동네 정형외과에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제 어깨 관절 상태를 확인한 뒤 X레이 촬영을 했어요. 이후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며 초음파로 척추와 어깨 부위를 검사했습니다. 검사 후 염증 때문에 부어 있는 곳이 있다며 주사를 놔 줬어요. 가격을 중간에 물어보는 게 민망해서 일단 아무 말 없이 진료를 받았습니다. 계산할 때 보니 초음파 검사비, 주사비용이 각각 3만 원. 둘 다 비급여 진료였죠. 실비보험용 증빙서류를 요청하니까 3000원이 더 추가됐어요. 저는 실비보험을 들어서 나중에 6만2000원을 환급받았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습니다. 적어도 비급여 진료 항목은 가격을 미리 알려주고 검사를 왜 하는지 등을 충분히 설명해 주는 게 예의죠.(53·회사원)
“병원 수익성보다 공익성이 더 중요해”
―지난해 11월 잠시 미국에 있을 동안 복통으로 응급실에 갔어요. 미국 응급실은 1만 달러가 넘는다 어쩐다 하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겁먹었었는데, 역시나 어마어마했죠. 진료비까지 다 합해서 1만4100달러(약 1562만 원) 정도가 나왔어요. 저는 제 회사에서 보험 처리를 받아 2800달러(약 310만 원)만 냈어요. ‘미국에선 보험 혜택을 못 받는 일반인들에게 병원 문턱이 얼마나 높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에 사는 신랑 친구는 100% 개인 돈으로 일반 건강보험에 가입했는데 한 달에 500∼600달러가량을 낸대요. 미국에선 ‘돈이 애매하게 있느니 차라리 한 푼도 없어서 100% 정부 보조를 받는 게 낫다’는 얘기까지 나온답니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38·여·회사원)
―공공의료시설과 민간병원 간 균형을 맞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선 공공의료는 필수입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음압병실을 갖춘 공공의료 시설들이 메르스 진료 거점병원으로 활약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공공의료시설 확충을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해서도 곤란합니다. 민간병원들끼리 경쟁을 붙여 더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죠.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환자 중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건강과 목숨이 달린 문제인 만큼 수익성만 좇아선 안 되죠.(50·대학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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