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기업의 홍보 담당자라면 누구나 혀를 내두르는 분야가 하나 있습니다. 조직의 수장(首長)을 홍보하고 이미지를 관리하는 일이죠. 이른바 ‘오너(owner) 홍보’를 둘러싼 이들의 고민은 끝이 없지만, 문제의 원인은 대개 간단합니다. ‘회장님’ ‘사장님’의 모든 행보에 자신들이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A그룹의 B 회장은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을 즐겨 했습니다. 문제는 B 회장이 특정 제품이나 현상에 대한 호불호를 여과 없이 밝히곤 했다는 점이었죠. 당연히 대부분의 내용은 기사화됐습니다. 덕분에 애먼 홍보실이 발칵 뒤집히곤 했습니다. B 회장이 어떤 제품을 극찬하면 경쟁업체가 불만을 제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어떤 직원도 그를 말릴 엄두를 못 냈을 겁니다.
한 패션업체의 사장인 C 씨는 언론과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꺼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문제는 전임 사장이자 창업주였던 그의 부친은 많은 언론인과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는 스타일이었다는 것이죠. 업계 사람들은 “회사가 급성장하더니 C 사장이 거만해졌다”고 쑥덕거렸습니다. 홍보팀 관계자들은 열심히 해명을 하고 다녔지만 C 사장에 대한 기자들의 ‘불신’은 여전히 없어지질 않고 있죠.
하지만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들여다보면 웬만한 대기업 회장보다도 홍보하기 어려운 ‘수장’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의 일정을 다룬 청와대의 각종 홍보물은 누리꾼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 지 오래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에 답답한 마음을 숨길 데 없는 누리꾼들에게 훌륭한 ‘떡밥’이 된 겁니다.
최근 SNS에서 크게 히트(?)하고 있는 소재는 두 가지입니다. 이른바 ‘살려야 한다’ 사진, 그리고 ‘소방 호스 물대기’ 사진이죠.
‘살려야 한다’ 사진이 조롱의 소재로 전락하게 된 과정은 이렇습니다. 14일 박 대통령이 메르스 상황 점검 및 의료진 격려차 서울대병원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의료진과 통화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 이 병원 의료진이 붙여둔 ‘살려야 한다’는 문구가 함께 들어갔습니다.
이 사진을 본 누리꾼들은 ‘작위적’이라며 비꼬기 시작했습니다. 연출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당연히 합성 사진들이 줄을 이었죠. 문구를 ‘나(대통령)부터 살려야 한다’라고 바꾼 사진, 국정수행 지지율 변화 그래프를 바라보며 ‘대구는요?’라고 되묻는 사진 등이 SNS에서 돌았습니다. 병원 측에서 해명을 내놨지만 패러디는 오히려 웹툰 등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21일 박 대통령은 가뭄 지역인 인천 강화군에서 소방 호스를 이용해 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이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은 ‘무리한 설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죠. 소방 호스를 이용해 물을 논에 바로 뿌리면 강한 수압 탓에 어린 벼가 쓰러질 수도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즉 박 대통령의 가뭄 해소 노력을 무리하게 홍보하려다 논을 망쳐 버렸다는 것입니다.
누리꾼들의 비아냥거림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미 몇 차례 화제가 된 바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박근혜 번역기’의 운영자는 박 대통령이 물을 뿌리는 영상을 올린 뒤 “광화문인 줄 알았다(시위대를 막는 물대포에 비유)”는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누리꾼도 “이 일정을 기획한 사람은 아마 대통령의 지능적 안티일 것”이라며 화답했죠.
과연 홍보가 잘못된 걸까요?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릴 때는 높이 쳐들어 벼가 쓰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미리 귀띔을 해줬어야 했고, ‘살려야 한다’는 문구가 논란이 될 것을 예견해 문구를 미리 떼어냈어야 했던 걸까요? 사실 SNS에서 대통령의 이미지가 바닥을 치고 땅 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은 상황이 된 것이 홍보 담당자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실패는 대기업 회장 홍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조정할 수 없는 변수, 즉 메르스 사태를 둘러싸고 계속돼 온 대통령의 무기력한 대응이 이들의 실패를 불러온 겁니다. 홍보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홍보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홍보의 대상’ 자체가 훌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몰랑(아, 몰라)’이라는 비하적 유행어가 왜 대통령의 뒤를 계속해서 쫓아다니는지를 곱씹어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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