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 시드니 J 해리스는 “승자는 어린이에게도 사과할 수 있지만 패자는 노인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못한다”고 했다. 사과하는 것이 곧 패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사과를 하면 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과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승자가 될 수 없다.
지난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사과로 넘쳐났다. 그만큼 사과할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누구는 사과를 하지 않았고, 누구는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아 역풍을 맞았으며, 또 누구는 비교적 충실한 사과로 점수를 땄다.
18일부터 24일까지 트위터와 블로그 등에서 사과라는 키워드를 언급한 문서는 무려 7만9120건이 검색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부실대응 관련 사과문을 발표한 23일 하루에만 2만1020건이라는 많은 언급량을 기록했다. 당일 “대국민 사과도 민영화하는 것이 좋다”는 트윗이 누리꾼 사이에서 대유행이었다.
이날 이 부회장의 사과에 대해서는 찬반 여론이 엇갈렸다. @theb****님은 “이재용, 사과의 정석을 보여준 듯. 1. 미안하다. 너희 심정 나도 공감한다. 2. 재발 방지. 조지고 뿌리 뽑겠음. 3. 긍정 메시지. 열심히 하고 있는 의사 간호사들 응원해 달라”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step******님은 “보통은 잘못하면 벌을 주는 게 정상이지만 삼성은 원격진료 허용이라는 커다란 상을 받았다. 권력은 이미 자본에 넘어간 지 오래”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사과와 함께 언급된 인물 연관어 1위에 올랐다(7602건). 기자회견 데뷔 치고는 성공한 셈이다.
2위는 4741건의 박근혜 대통령이 차지했다. 메르스 초기대응 실패와 관련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bitt*****님이 올린 “대통령이 삼성병원장의 사과를 받았다는 시점에서 정말이지 아연실색하게 된다… 왜 그걸 대통령이 사과 받는가? 그것도 서울에서 오송으로 불러내서! 이건 자신이 제왕인 양 행동하는 것이다”라는 비판은 무려 2596회나 퍼져 사과가 포함된 문서 가운데 리트윗 1위를 기록했다.
3위는 표절 논란으로 뜨거웠던 신경숙 작가가 차지했다(2610건). 신경숙 씨는 “해당 소설을 작품집에서 빼겠다며 이 문제를 제기한 문학인들을 비롯해 주변의 모든 분들, 특히 많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사과에도 불구하고 누리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libr***님이 올린 “신경숙 인터뷰 요약: 표절 일부러 안 했는데 와 되게 비슷하더라. 신기하다. 근데 너희들이 괴롭혀서 너무 힘들어. 하지만 (책을 계속 팔아야 하니까) 일단 사과는 할게”라는 트윗이 이런 분위기를 잘 전달한다. 4위에는 임명 뒤 첫 번째 대정부질문에서 여야 의원들에게 사과를 한 황교안 총리가 올랐다(1390건). 사과문으로 더 큰 비판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은 전 여자친구의 데이트 폭행 폭로로 화제가 된 진보논객 한윤형 씨다(1115건). 사람들은 한윤형 씨의 두 차례에 걸친 사과문이 사과로 읽히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가 고종석 씨는 “안타깝다. 법정에서의 자기방어가 아니라면, 사과에는 아무런 유보가 없는 게 최상이다”라고 썼다.
사과와 함께 언급된 인물 연관어 6위부터 10위까지는 문재인(박 대통령에게 사과 요구), 장동민(여성 폄훼 발언에 대한 잘못된 사과 다시 언급), 박가분(한윤형 씨와 함께 데이트 폭행을 가한 진보논객으로 언급), 이건희(이재용 부회장 사과와 함께 언급), 이재명(문화일보에 대한 메르스 관련 보도 사과 요구) 등이 차지했다.
사과와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된 전체 연관어 상위권에는 삼성과 메르스, 정부와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사과는 어렵다. 말보다 태도가 중요한 것이 사과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사과의 진심 여부는 금세 드러난다. 가짜 사과는 안 한 것보다 더한 후폭풍을 부른다. 트위터에 @1717*****님이 올린 오드리 헵번의 명언이 회자된다.
“사과는 빠르게 키스는 천천히 사랑은 진실하게 웃음은 조절할 수 없을 만큼 그리고 너를 웃게 만든 것에 대해서 절대 후회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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