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학원비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아내는 “상위권 애들이 많은 학원이니 보내야겠다”고 했다. 남편에겐 말이 안 되는 논리였다. ‘아이 명문대 보낸 집’이라며 전세를 옮겨온 것도 그랬다. 기대만 넘쳐 현실적 판단이 마비된 것 같았다. 아내는 아이가 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모양이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남편은 생각했다. 내년이면 수험생인데 아이에게선 의지조차 찾아볼 수 없다. ‘상위권 애들이랑 같은 학원 다니면 성적이 오르나?’
아들도 ‘그까짓 점수 몇 점’ 가지고 잘난 척하는 놈들이 득실거리는 학원에 다니기 싫단다. 아내가 울상을 지으며 아들 방으로 따라 들어가 달래려 했다. 아이는 더욱 기고만장해져 성질을 부렸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가타다 다마미는 저서 ‘철부지 사회’를 통해 “아기 때부터 엄마의 가치관을 주로 내면에 각인시켜 기대에 부응해온 아이의 경우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환상적 만능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환상적 만능감은 성장기 자신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심각한 문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엄마의 무조건적 사랑에 제동을 걸어 아이 성정의 균형을 그나마 잡아줄 수 있는 게 아빠 방식의 규칙이지만,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 문제를 제외하고는 아빠는 무관심을 요구받는 세태다.
풀 죽은 아내가 아들 방에서 나오며 남편에게 관심을 촉구했다. “당신이 어떻게 좀 해봐. 윽박지르지 말고 살살 달래줘.”
그러나 남편은 마뜩지가 않다. 예비 수험생이라며 성질만 부리는 아들 녀석이 그러잖아도 꼴사나운데 ‘제발 그 학원 가서 임차료라도 보태주라’고 빌라는 말인가. 뚱한 남편의 표정에 아내가 기어코 화를 내고 만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그러나 이제는 아내도 알아야 한다.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아들이라도, 곧 어른이 되는 문턱을 넘어 제 몫을 해내야만 한다는 것을. 아내 또한 아들을 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하는 과정이다. 자기애에 거듭 상처를 입고 환상적 만능감을 상실해 가면서 비로소 객관적인 자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분수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분수를 모르는 것만큼 불행한 인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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